2024-03-29 01:11 (금)
정말 입학기술만 가르치려나
정말 입학기술만 가르치려나
  • 승인 2008.04.30 0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모의고사가 올해 남은 기간에만 최대 16회에 달한다고 한다.

정부의 초중고교 자율화 조치로 그동안 금지됐던 사설 모의고사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고 3학생의 경우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시험 모의평가 2회, 인천ㆍ서울시 주관의 전국연합학력평가 2회, 입시학원이 실시하는 모의고사 12회가 예정돼 있다.

고 1∼2학생도 연합학력평가 3회와 사설 모의고사 7회를 합쳐 자그마치 10회에 이른다.

이 정도라면 ‘시험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사설 모의고사는 그간 학교 차원의 응시가 금지돼 왔으나 학생과 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한다는 차원에서 금지 지침이 폐지됐다.

학교와 학생 개개인의 실력 차이를 너무 몰라 제대로 된 처방을 내릴 수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학생들을 ‘시험의 노예’로 만드는 것 또한 올바른 교육은 아니다.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해 학원을 더 다니고 개인 과외를 더 받는다면 사교육비 부담은 늘 수밖에 없다.

과도한 시험-학원 수강-사교육비 증가의 악순환이 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이 유념해야 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 등 일부 명문 고교들이 하버드ㆍ예일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학생들이 이른 아침부터 통상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며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말을 인용해 "한국은 온 나라가 미국 명문대 진학 준비에 몰두하는 듯하다”고 꼬집었다.

지금은 몇몇 특수목적고 등에 한정된 얘기이지만 이런 상황은 자율화 조치로 교육이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되면 일반고에서도 쉽게 목격될 것이다.

백보 양보해도 고3이 한달에 많게는 네 번씩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시험은 교육의 보조 수단이지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모의고사는 1년에 서너번만 치러도 학교나 학생의 수준을 파악해 수준별 이동수업이나 학교 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데 충분하다고 본다.

학생들이 ‘시험 지옥’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감과 학교장이 학교운영위원회 등의 의견을 물어 신중하게 응시 여부와 횟수를 결정해야 한다.

너무 잦은 시험으로 한국에서는 점수 높은 학생만 길러낸다는 비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은 없어야겠다.

현재 중 2가 대학에 들어가는 2013학년도부터 대입 수능 영어과목이 영어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된다.

내년부터는 외국인학교 학생도 정규 학력이 인정돼 국내 상급학교 진학이 가능해지고, 내국인의 외국교육기관 입학 문호가 대폭 확대된다.

이런 조치는 사교육비의 40%를 차지하는 영어 열풍을 식히고 해외 유학 수요를 국내로 흡수하기 위한 고육책들이지만 영어회화 사교육과 외국계 학교 입학 경쟁 등의 풍선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자칫하면 유치원과 초중학교 시절부터 시험 지옥을 경험해야 할지 모른다.

당국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