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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시민정치’
‘노무현의 시민정치’
  • 승인 2008.09.0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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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가 논란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김해 진영 봉하마을의 저수지 인근 잔디밭에서 열린 민주당 대회에 참석해 격려사를 한 것이 논란을 촉발시켰다.

민주당의 김민석 송영길 최고위원을 비롯해 지역구의 최철국 의원(민·김해 을)과 경남도당 당원 300여명이 참석한 민주당 경남도당 전진대회에서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격려사를 통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이 되려면 전국정당이 돼야 한다. 당 지도부들이 지역구 정치를 벗어나야 한다”고 지역주의를 비판하며 동시에 전국정당화를 주문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그는 KBS 정연주 전 사장 문제와 MBC 민영화 추진, 인터넷 등 현 정부의 미디어정책을 비판하기도 했고, 자신이 추진 중인 ‘민주주의 2.0’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야권 저격수’로 일컬어지는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전직 대통령의 길’이라는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참여를 비난하고 나섰다.

차 대변인은 “말로는 정치 안한다면서 행동은 정치 깊숙이 들어와 있으니 헷갈린다. 푸틴의 상황정치를 닮아간다”고 포문을 열었다.

‘우편향적’ 논평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는 “왼쪽에서 중간에 서있는 사람을 보면 오른쪽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노 전 대통령께서 운영하실 (인터넷)사이트도 불만의 배설장이 아니라 건전한 담론의 교환장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정치 불개입’원칙을 천명한 노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민주당 도당 전진대회에서의 발언뿐만 아니라 측근들의 움직임에서도 현실정치 참여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참여정부 공과를 평가하고 참여정부의 정신을 살려나가자는 취지에서 연구나 기념사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성경륭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성환 전 정책조정비서관 등이 주축이 되어 이달 중 발족을 앞두고 있는 ‘미래정책연구원’ 설립이 대표적이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이달 중 기념사업을 위한 재단 설립 준비위가 꾸려지기도 한다. 재단은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관련사업이나 저술활동 등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 이상 직책을 지낸 인사 200여명의 순수 친목 모임인 ‘청우회’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과 장관 등 고위관료를 중심으로 한 ‘참정회’가 결성되어 있고, 정치권 안에서의 ‘친노진영’과 정계진출을 노리는 측근 인사들의 모임인 ‘청정회’설립이 추진 중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친노 측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 같은 움직임을 새 정부에서 곱게 봐줄 이유는 물론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같은 상황논리가 새 정부 관계자들의 심기를 건드리기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노’라는 엄연한 정치세력과 지지기반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 외면하려 드는 것은 무리수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의 의사와 관계가 있는 없든, 그의 말 한마디와 측근들의 동향 자체가 현실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는 점을 여권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끝내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당시 ‘정치 불개입’을 선언했었다. 직접적인 정치개입은 이뤄질 수도 없지만, 이뤄져서도 안 된다.

다만, 전직 대통령으로서 온전하고 균형 잡힌 ‘시민정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현 집권여당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은 피해달라는 주문이다.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민주주의 2.0’을 국민토론의 장으로 제공하는 것은 인터넷상에서의 ‘시민정치’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의 말대로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이 추진한 ‘해비타트 운동’이나 엘 고어 전 부통령이 주축이 된 지구온난화방지운동도 건전한 ‘시민정치’다.

시민정치 다운 시민정치가 이뤄지면 퇴임 후 상승세를 타고 있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비록 집권여당 입장에서 보면 껄끄러운 현실이지만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논리가 실체인지 아닌지는 분석해 본 적이 없다. 정치공학적으로든 사회과학적으로든 객관적 분석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상승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의한 반대급부가 아니라, 오로지 그의 ‘시민정치’ 방향과 내용으로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인 것은 사실이다.

박유제 서울취재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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