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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장려, 전시행정으론 안된다
출산장려, 전시행정으론 안된다
  • 승인 2008.09.0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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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국가의 절대적 시책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산아제한 시책이 작금에는 출산장려로 바뀌었다. 당시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남자의 기시기를 손보는 것이 훈련에 앞서 가장 중요한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또 보건소 직원들은 하루 종일 아낙네를 찾아다니며 임신중절 수술을 권유, 목표량에 매달린 것이 60년~70년대의 시대적 풍경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관, 난관의 복원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언제부터인가 뚝 끊긴 신생아의 울음소리와 함께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문제로 부상된 후 전국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갖가지 출산장려 시책은 정말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가령 A군에서 출산지원금 2아 30만원이 발표된 후 그 다음날 B군은 1아 50만원, 2아 100만원 3아 이상 500만원으로 제각각 발표된 것이 현재 도내 시·군의 출산관련 시책이다.

또 지원금 외 상품권 지급, 각종 영양제 지급, 출산용품 지원 등 한마디로 경쟁적이다. 이것에는 표를 구해야 하는 민선시대의 한 단면이 시책에 편승, 작용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출산장려, 전시행정으론 안 된다. 특히 정부의 시책이 국민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고도 멈칫거리면 공신력 문제가 불거진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도입한 출산장려 정책들이 잇따라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사업의 경우 불과 7개월 만에 예산이 바닥나고, 출산지원도 지자체별로 제각각이라고 하니 얼마나 졸속으로 마련된 사업이었는지 가늠이 어렵지 않다.

수요예측을 잘못해 일찌감치 예산이 고갈된 것도 문제다. 또 대책이란 것이 고작 수혜기준을 강화, 대상자를 줄인다는 계획에는 정말 어이가 없다. 뜬금없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지원 폭이 줄어든 산모들에겐 정부정책의 공신력에 배신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며 가족계획을 장려했던 때를 떠올리면 상전벽해가 따로 없지만,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직감소를 거듭해 왔다. 정부가 그동안 세 자녀 가정지원, 산모·신생아지원 등 갖가지 묘책을 내놓았던 것도 저 출산 현상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대책마련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경제난과 양육·교육비 등을 거론하며 냉소적 입장을 보여 왔지만, 서민들 특히 돌봐줄 사람 없는 저소득층 부부들에겐 부족하나마 적지 않은 힘이 될 만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아이 낳는 것을 꺼리던 그들에겐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출산을 축복해 주는 이 사회에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졌을 터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이 떨어졌으니 지원을 해 줄 수 없다’는 건 허망한 코미디지 결코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출산지원금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도내 20개 시·군은 조례를 통해 출산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다 그나마 지원규모와 대상도 제각각이다. 일관된 기준이 없다보니 잣대에 따라 지원금도 천차만별이고 중복수혜도 가능하다. 단지 사는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유무가 갈린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차별’이 없다.

관계당국은 시행 초기 홍보부족 등으로 자리가 잡히지 않았던 지난해의 대상자 수를 근거로 수요를 예측해 예산편성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들이 펼치는 ‘출산장려’ 제도에 대해 스스로조차 그 효과를 믿지 못했다는 얘기다. 국가의 장래와 관련된 사업이 탁상·전시행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함께 그를 실행하는 당국의 치밀하고도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부의 산모·신생아 도우미 제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그 수혜대상자를 줄이겠다는 발상은 난센스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쌍수로 환영받아 장려돼야 할 사업을 대상자를 대폭 제한하기 위한 제도로 변절된다는 것은 정부와 국민 간 신뢰도 문제다. 또 갓 태어난 신생아의 울음소리에 도내 시·군마다 제각각 지원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도 들쑥날쑥 그 자체인 기초단체의 출산관련 시책도 일정기준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 할 것이다.

박재근 창원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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