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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라
삼성,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나라
  • 승인 2009.06.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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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에서 비롯된 삼성그룹 편법 승계 사건은 결국 ‘없던 일’로 마무리됐다.

 CB 발행시점부터 따지면 13년 만이고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일부 법학 교수가 에버랜드 경영진을 검찰에 배임 혐의 등으로 고발한 때부터 쳐도 9년을 끈 지루한 송사 끝에 나온 결론 치곤 허망한 느낌마저 든다.

 삼성그룹 법무팀을 이끌다 내부고발자로 변신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가동된 특검이 지난해 4월 기소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에 대해 대법원은 “에버랜드 CB 발행은 주주 배정 방식이 분명하고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 청약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CB 저가 발행으로 에버랜드가 손해를 입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2심 판결과 같은 취지다. 이 전 회장과 똑같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1,2심에서 유죄로 판결났던 에버랜드 전 대표이사 허태학씨와 박노빈씨 사건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에버랜드가 1996년 CB를 적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발행한 게 이번 사건의 발단이다. 에버랜드는 주주인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실권시킨 CB를 이 전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삼성그룹 전무 남매에게 인수시켰다.

 이 전무는 당시 90억 원 정도에 인수한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 약 25%를 소유하는 최대주주가 됐다. 연간 매출이 160조 원에 이르는 삼성그룹의 경영권은 그룹 전체 매출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에버랜드가 쥐고 있다.

 에버랜드가 13.34%의 지분으로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생명은 7.21%로 삼성전자를, 전자는 35.3%로 삼성카드를, 카드는 25.6%로 에버랜드를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 간 순환출자 덕분이다.

 따라서 에버랜드를 차지하면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허씨와 박씨 사건에서 6대5로 ‘간신히’ 무죄 결론이 난 것은 법리적 다툼이 팽팽했음을 입증한다. 무엇보다도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삼성그룹의 경영권이 거의 공짜로 상속됐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이 전무가 낸 세금은 1995년 종자돈 격으로 증여받은 61억 원에 대한 16억 원이 전부다. 봉급쟁이의 유리지갑에는 추상같은 세금망이 재벌에는 이토록 허술하다면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에버랜드는 비상장기업이니까 그렇다 쳐도 에버랜드의 주주인 상장기업들이 CB를 실권시킨 것은 소액주주들에 대한 배임에 다름 아니다.

 검찰이 피해자를 에버랜드가 아니라 기존 주주들로 지목했다면 유죄로 판결될 수도 있었다는 재판부의 견해를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삼성그룹과 이 전 회장 부자는 편법 승계의 굴레를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에버랜드의 피해가 없다는 이유로 법원이 내준 면죄부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외면해선 안된다. 삼성은 이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서는 것만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다.

 지난해 발표한 그룹 경영 쇄신안을 조속히 이행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다. 다른 재벌들도 편법 상속의 관행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이번 일을 계기로 지배구조 개선과 기업문화 향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제가 지금처럼 위기에 처해 있는 때일수록 재벌의 기동력과 신축성이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투명 경영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재벌은 국가경제의 암적인 존재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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