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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조정의 지혜
행정구역 조정의 지혜
  • 승인 2009.06.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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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영
김해시 학예연구사
 오성(백사) 이항복과 한음 이덕형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라 돈독한 우정을 쌓았으며, 후대에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가 어릴 적 재미있게 읽은 그분들의 설화 중 훗날 재상이 된 오성의 기지와 사리분별의 정확성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다.

 오성의 집에 감나무가 있어 가지가 이웃집 권율의 집으로 휘어 들어갔는데 이 가지에 열린 감을 권율 집에서 늘 차지하곤 하였다. 이에 화가 난 오성이 따지자 권율은 우리 집에 넘어온 가지이므로 가지를 자르든지 아니면 그 가지에 열린 감은 우리 것이라고 답하였다. 이에 오성은 권율이 자고 있는 방문에 느닷없이 주먹을 찔러 넣고는 권율이 이를 탓하자 “대감 그렇다면 이 주먹이 과연 누구의 주먹이오?” 하고 물었다. 권율이 “네 주먹이지 누구 주먹이겠느냐”라고 말하자 그렇다면 뿌리가 우리 집에 있는 나무에 열린 감은 누구의 감이오? 하고선 감을 가로챈 일을 추궁하였다고 한다.

 최근 부산시와 김해시가 옛날 김해시였다가 군부독재 시절 일방적인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산시에 편입된 강서구 일원의 행정구역 재 개편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수로왕비가 머나먼 인도에서 뱃길로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망산도가 있는 곳, 왕후가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에게 인사드린 곳, 수로왕과 혼인하고 첫날밤을 보낸 곳 등이 가야의 땅 김해 아닌 곳에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부산시는 역사적 배경이나 주민들의 동질감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고 현재 생활권이나 경제가 예속된 상황만 중시한다. 입장을 바꿔보자. 우리나라가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현재 점유도 중요하지만 신라시대부터 독도가 우리 땅이었다는 역사서와 문헌, 고지도 등을 근거로 하지 않는가?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면 부산시도 강서구의 점령을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 각종 기록과 고지도를 보면 옛 부산지역은 동래부로 낙동강 이동지역에 국한된다는 것이 명확하다. 물론 낙동강 본류의 서쪽은 김해 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동일 생활권이라 할 만큼 서로 지역적으로 붙어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같은 금관가야 권역에서 500년의 세월을 함께 보냈으며, 이후에도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살아온 양 지역이 이렇게 갈라지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강서구는 부산시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외곽에다 낙후되고 별로 돈이 안 되는 땅이다. 강서구는 김해시 입장에서 가야문화의 뿌리가 되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으며, 수천, 수만년 오랜 세월 동안 동거 동락해 온 소중한 터전이다. 김해에서 가락으로 가는 도로 확장공사는 10년 전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가락에서 김해로 오는 도로는 아직도 완공되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의 예산 집행 순서를 엿볼 수 있는 한 사례다.

 앞서 소개한 설화의 결론을 소개하겠다. 오성의 지혜와 강단에 반한 권율은 오성을 나무라기보다 오히려 오성을 가까이 하였고 결국 훗날 오성은 권율의 사위가 된다. 한순간의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오히려 이를 포용할 줄 아는 권율의 대인적인 풍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부산시는 강서구를 김해시에 시집보내서 강서구가 더욱 사랑받고 행복하게 잘 살게 되기를 바랐으면 한다. 그래서 부산시와 김해시가 장인과 사위 관계로 이전보다 더 상생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희망일까? 서로의 이해가 극심하게 충돌하는 이 때 어른의, 대도시의 큰 포용이 절실하다.

 김해에서 뻗어나간 가락, 대저, 명지, 녹산 일원이 비록 지금은 부산시에 속해 있지만 그 뿌리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권은 아직, 아니 영원히 김해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 부산시와 김해시의 대통합이 필요하다면 하자. 대신 통합시의 이름은 당연히 역사적 전통성을 가진 김해시로 하면 된다.

송원영 김해시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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