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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깊이]“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여기 잠들다”
[생각의깊이]“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여기 잠들다”
  • 승인 2009.06.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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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환
계명대 교수ㆍ정치학 박사
미국의 독립과 영국의 교훈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무렵 영국 정치는 매우 부패해 있었다.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이권을 둘러 싸고 금권정치가 횡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인구는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 200만 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또 영국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미국에는 공업이 발달하지 못했고 병기의 생산 능력도 거의 없었다. 영국을 상대로 미국이 독립을 쟁취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기고 독립을 했다. 영국이 해외에서 제국을 형성해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프랑스를 비롯한 스페인, 네덜란드, 러시아 등이 영국에 대항하여 미국을 도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국은 국내의 정치적 부패에 젖어 외국과의 외교 관계를 매우 등한시하여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적대관계에 있었다. 즉 영국의 정치 부패는 영국의 정치 외교 능력을 저하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영국의 충격은 컸다. 이를 계기로 비드 수상을 비롯해 영국의 정치인들은 정치, 외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금권정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정치가들에게 절제와 절도가 요구되고 정치적 원칙(principle)의 중요성도 새삼 강조되기 시작했다.

 영국 지도자들의 스스로의 개혁을 통해 영국은 다시 살아났다. 20년 후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했다. 식민지를 확대해 가면서 영국의 패권(Pax-britanica)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영국은 정치적 부패로 미국이라는 신천지를 잃었으나, 자기 개혁을 통해 대영제국을 유지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부패방지법

 그렇다고 영국의 정치부패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영국은 선거권의 확대로 대중민주주의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대중의 정치참여로 정당이 발전하고 동시에 선거에서 돈을 이용한 매수 행위가 일반화되었다. 표를 얻기 위해서는 매표가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래서 돈을 가진 자 만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정치를 담당할 수 있게 되었다. 선거는 돈 잔치가 되고 매표는 당연시되었다.
 동네 술집이 선거 사무실이 되었으며, 선거기간 동안 술을 맘껏 얻어 먹은 유권자는 선거 전날 지지 후보자를 알리는 색깔의 깃발을 대문에 내걸었다. 선거를 할 필요도 없이 당선자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영국 정치의 부패를 상징하는 이야기이다. 1880년 선거는 부패의 극치를 이루었다.

 돈을 가진 자 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면, 대중이 투표권을 가진다 해도 그것은 공허한 것이었다.

 대중은 정치로부터 무책임해지게 되고, 돈을 가지고 의회에 진출한 자들은 그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게 마련이다. 민주주의 그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당시 젊은 정치가 헨리 제임스 법무부 장관은 영국의 정치를 대중들에게 돌려주고 민주주의를 회생시키기 위해 3년 간 의회와 지루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 자신이 의원이었기 때문에 동료의원들의 협박과 회유도 심했다.

 그러나 그는 동료들에게 금권정치의 폐해를 설득해 나갔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부패방지법이다. 영국의 선거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돈이 가장 적게 드는 선거가 된 연유이다.

 노무현의 교훈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돈 안드는 선거를 뿌리내리게 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돈 선거가 과거 보다는 훨씬 줄어들었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직접 몸으로 느낀 것을 실천한 것인지 모른다. 가난한 사람도 성공하고 이상을 펼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 것이다.

 아마 그가 죽은 후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슬퍼한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자그만 비석에 무엇을 새길 것인가를 두고 고민한다고 한다.

 아무리 많은 것을 새겨도 그의 무게를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 여기 잠들다’라고 새기면 어떨까. 돈 안드는 정치로 대영제국을 있게 한 헨리 제임스 법무부 장관의 묘비에도 꼭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성환 계명대 교수ㆍ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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