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7:10 (목)
그래도 벚꽃은 핀다
그래도 벚꽃은 핀다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1.03.14 1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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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사회부 부장
 거꾸로 가는 시간은 없다. 몇 번의 깜짝 추위는 있겠지만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왔다. 한두 주 전 고양이 눈 같은 꽃망울을 가지고 뭉글거리기 시작한 나무들이 저마다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머잖아 개나리, 진달래, 벚꽃도 활짝 필 것이다.

 오늘 창원대로를 타고 출근했다. 창원대로 길가에 꽃을 피우려 웅크린 벚나무들이 그렇게 처연할 수 없었다. 11일 일본 동북지방을 휩쓴 쓰나미의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가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원전 폭발이 이어지면서 일본 국민의 공포가 더 깊어질수록 실감을 더한다. 일본의 국화(國花)는 벚꽃이다. 한 번에 몰아 피는 벚꽃의 위력에 간혹 시샘이 일기도 하고 창원대로를 온통 백색으로 물들이는 봄철마다 몇 주 간 마음이 불편할 때가 간혹 이었다. 알게 모르게 일본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을 벚꽃에 토해 냈는지 모른다.

 진해 군항제는 벚꽃축제다. 4월1일 부터 창원 진해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봄 축제로 흐드러질 때, 아직도 일본열도는 참사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상처가 워낙 커 아물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강진이 몇 차례 다시 온다는 예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즐기는 사쿠라 축제는 올봄에는 누구 하나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일본 국민이 대참사를 겪으면서 보여주는 질서의식과 냉철함에 세상이 놀라고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이렇게 초연할 수 있는 건 오랫동안 몸으로 터득한 일본인들의 삶의 지혜다. 대한민국은 이웃나라 일본과 함께 역사를 걸어오면서 대부분 대립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일방적으로 당한 역사라 부끄럽기도 할뿐더라 이런 상처들이 아직 걷혔다고 말할 수 없다. 툭하면 터지는 독도 영유권 문제는 우리를 자극하고 분개하기에 충분하다. 그래도 멀리 할 수 없는 이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 “일본을 돕자”는 구호활동이 전개되고 아린 마음을 전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네티즌들의 성금 기부 활동이 활발하다. 많은 한류 스타들도 여러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보내려 하고 있다. 한류스타 중 일본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배용준씨는 10억원을 내놓았다.

 공지영 작가는“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자연 앞에 얼마나 겸허해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한다”며 실종된 가족을 찾는 누리꾼의 글을 계속 리트윗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데 희망을 글로 힘을 보내고 있다.

 봄이 오면 가장 강렬하게 우리를 맞았던 벚꽃이 올봄에는 결코 화려함으로 우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움츠려도 생명은 쉼 없이 대지를 두드리며 고개를 내민다. 일본의 대참사로 놀란 봄이 저만치 물러갔다. 그래도 산수유가 피고 줄지어 봄꽃들이 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 속에 벚꽃이 피어나고 바람 따라 벚꽃이 이리저리 휘날릴 때 일본인들의 아픔도 날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띄워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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