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4:49 (금)
눈치나 보는 쪼잔한 놈
눈치나 보는 쪼잔한 놈
  • 오태영
  • 승인 2011.08.03 1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오 태 영창원취재본부 부장
 우리사회에는 언제부턴가 ‘맞는게 상책’이라는 표현이 잘 사는 요령으로 정착됐다. 주먹질이 분명 좋은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것도 인지상정상 피하고 싶은 일이다. 그런데도 맞는게 낫다는 인식이 원칙처럼 자리잡게 된 배경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때리는 행위를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이다. 때리는 행위는 무도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그러한 인식이 수사과정에서 맞다가 어쩔 수 없이 방어 차원에서 몇 대 때린 것도 죄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맞는게 상책이라 말하는 사람도 정작 아이에게는 ‘때리면 너도 때려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말은 자신의 보호에 방점이 두어졌다기 보다는 응징적 의미가 강하다. ‘바보같이 맞고 다니냐’는 표현도 그러한 속내의 발현으로 이해된다. 남에게는 맞는게 상책이라 하면서도 정작 자식에게는 ‘같이 때려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은 후환이 두려워 차리리 맞는게 낮다고 되뇌이면서 자식이 그런 꼴을 당하는 것은 보기 싫다는 뜻이리라.

 이런 이율배반적 언행의 뒷면에는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 숨어있다. 지신감을 갖고 당당히 살기에는 나는 부족한 못난 놈이거나, 자존심이 구겨지고 억울해도 처벌을 받거나 합의금을 주느라 돈을 쓰기는 아깝다는 쪼잔한 성격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못난 놈과 쪼잔한 놈을 양산한 것은 법이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선지 남이 폭행을 당하고 있어도 모른 채 지나가는 게 다반사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보고도 눈을 감는 일에 익숙해졌다. 이래가지고는 우리사회가 건강하다 할 수 없다. 기백이 실종되고 눈치 살피는데 이골이 난 사회가 잘될 일이 없다.

 경찰청은 지난3월 쌍방입건 자제지침을 내리고 지난 4개월간 폭력 사건 511건을 정당방위로 처리한 그동안의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정당방위 행위 유형을 보면 멱살이나 팔을 붙잡는 행위, 몸을 밀치거나 뿌리치는 행위, 1~2회 때리는 행위, 넘어뜨리거나 팔을 꺽는 행위 등 계속되는 폭행을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했다.

 경찰은 정당방위 요건으로 침해에 대한 방어, 침해행위를 도발하지 않거나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경우, 방어수준이 침해수준보다 중하지 않는 경우,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 침해가 저지 또는 종료된 후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거나 상대방의 피해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3주 이상의 상해가 아닐 것 등을 제시했다.

 우리사회에는 물리적 폭력이 아닌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인격 무시를 넘어 짓밟는 말, 위압적 언어로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과 몸짓, 온갖 육두문자가 동원된 언어폭력 등을 당하게 되면 누구나 폭력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 가벼운 폭력을 행사했다고 치면 어떻게 될까. 경찰이 제시한 정당방위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사회에는 폭력을 부르는 인간들이 많다. 교묘한 말로써 열받게 하고 폭력을 쓰면 당하는 억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싸움을 말릴 때 적당한 몸싸움이나 폭력이 필요할 때도 있다. 물론 이런 경우라도 폭력이 옳을 수는 없다. 형법에 자력구제금지의 원칙이 있듯 억울하다고 해서 개개인에게 스스로 해결하도록 허용하면 사회는 혼란을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법으로 해결하기에는 법은 너무나 멀고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옳지는 않다고 해도 구제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경찰청의 정당방위 요건은 종전에 비하면 매우 전향적인 조치로 환영할 만한 일이나 미흡한 감이 적지 않다. 폭력을 부르는 인간들에 대한 효과적인 응징과 예방을 위해서라도 정당방위 요건을 더욱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 두차례 주먹질보다 사람을 더 심하게 파괴하고 치를 떨게하는 언어폭력과 행동을 규제할 장치가 필요하다. 분노에 치를 떠는 사람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눈치보며 쪼잔해지는 못난 놈이 더이상 되지 않도록 국가가 나설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