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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과 혁명
괴담과 혁명
  • 오태영
  • 승인 2011.11.10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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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태 영창원취재본부 부장
 한 언론사가 실시한 휴대폰 여론조사에서 2030세대의 51.6%가 한미FTA가 시행되면 우리나라가 미국의 경제식민지가 된다는 일부의 주장을 사실로 믿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 한미FTA로 광우병 미국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이 걸려도 막지 못한다는 괴소문을 믿는다는 2040세대도 48%에 달했다.

 황당하다 못해 이럴 수가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왜 이지경까지 왔을까.

 2040세대라면 대다수가 대학교육을 받은 지식층이다. 나름대로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한 지식과 경험이 있을 연령층인데도 이런 황당한 괴소문에 공감을 한다면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들에게는 잘나가는 정부관료와 기득권층은 뼈저리게 이해하기 어려운 처절한 환경이 있다. 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또는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 세대보다 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를 갖고 출발한다. 불과 20%만이 아버지 세대보다 잘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산다. 죽어라 공부해도 취업은 어렵고, 취업한다고 해도 상당부분이 비정규직이다. 사회의 첫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놓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들의 아픔을 안다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월급으로는 평생 제 집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비정규직임을 알면서도 거기로 눈을 돌려라고 하는 것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말이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일 안하고 놀겠다는 심리를 어찌 알겠는가.

 사회의 첫발을 내딪는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잘 못될 것이라는 좌절감을 안고 살다보니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팽배할 수 밖에 없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게 뭐가 있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기성질서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이 늘어나면서 이래도 안되니 확 바꿔보자는 막장 심리가 표출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울시장 선거가 코너에 몰린 2040세대의 막장심리를 그대로 대변했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부와 여당은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50만 명의 일자리 증가 수치에 대해 ‘고용대박’이라는 어처구니 없은 말을 내놓는가 하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ㆍ26재보선결과에 대해 ‘진 것도 이긴 것도 아니다’고 했다. 민심을 제대로 안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살려면 잘못된 통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6월말 현재 7.9%. 이런 통계를 내놓는데 젊은이들이 냉소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상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1주일에 수입을 목적으로 1시간 일한 사람은 취업자로 간주한다. 또 통계조사 시점 전 4주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했고, 조사주간에 수입 있는 일을 전혀하지 않았어야 실업자다. 취업 공부중이거나 취업의사가 없는 사람은 실업률 계산에서 빠진다. 이러니 실업률이 턱없이 낮을 수 밖에 없다. 학원에서 취직공부하느라 몇년씩 썩고 100군데가 넘는 곳에 취직문을 두드리다 지쳐 취직을 포기한 사람, 1주일에 고작 1시간 일한 사람, 이런 사람들이 실업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말이 나온지도 10년이 넘었는데도 이런 통계를 고치지 않고 있다.

 사회에 막장심리가 확산되면 필경 그것을 비집고 독버섯이 기생하게 된다. 괴담이 판치고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떠도는 현시점은 우리사회가 괴담을 더 이상 이겨낼 내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정부지의 물가, 막대한 전쟁배상금, 바닥을 치는 민족적 자존심,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정부. 이런 것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뒤엎고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했다. 국민의 공허한 심리를 비집고 외연을 확대한 다음 기성정당을 허물고 일당 독재를 이끈 히틀러의 집권 과정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거리로 나오는 유럽인들을 보고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 매일 혁명을 꿈꿨다는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됐다면 혁명 전야가 무르익었다는 반증도 된다. 기성정당이 힘을 잃고 국민을 대변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경고신호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데도 여야는 정권잡기 혈안에서 아직도 꿈을 꾸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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