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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매일
  • 승인 2012.10.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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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서 떨어져 죽은 아버지, 실수일까

`실수하는 인간`
정소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1만 2천원)

 아버지가 지붕에서 타고 내려오던 사다리가 아들의 심심풀이 허공 헛발질에 걸린다.

 거꾸로 추락한 아버지의 뒷머리에선 피가 콸콸 쏟아진다. 아들의 무심한 행동에 아버지가 목숨을 잃다니 이것만 보면 모진 운명이고 가슴 아픈 실수 같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사고를 쳐서 감방에서 평생 썩게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던 사람이었다. 아들은 쓰러져 피 흘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겁이 더럭 나지만 묘한 안도감도 느낀다. 아들은 죽어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수예요, 아버지. 아시잖아요."

 아들의 공중 헛발질은 실수였을까, 실수가 아니었을까.

 정소현(37)의 첫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은 실수가 어디서 온 건지 악착같이 파고든다. 아버지를 `실수로` 죽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이 들통날까 도망친다. 아버지의 죽음은 사고에 불과하고 경찰도 사고로 처리하겠지만 아들은 이 사고에 자신의 상처와 분노가 배어 있음을 알고 있다.

 단편 `돌아오다`에서도 할머니는 손녀에게 `딱 방 한 칸만큼의 능력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늘 깨우쳐준다. 자식들이 떠나서 홀로 남은 할머니는 기껏 취직해 독립할 채비를 하던 손녀를 집안에 잡아둔다. 그렇게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면서도 줄곧 손녀의 무능력을 탓한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집 팔아서 잘살 거니까요. 할머니가 흥분할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

 작가는 가족 안에서 반복되는 잔혹한 내상을 소설에 세밀히 옮겼다. 물리고 뜯기는 데 익숙해진 자식들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에게 정을 붙여 위안받기도 하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물고 뜯는 데 합류하기도 한다. 읽는 가슴이 서늘하다.

 문학과지성사. 308쪽. 1만 2천원.

의학사를 수놓은 위대한 발견 10가지

`콜레라는 어떻게…`
존 케이조 지음
(메디치… 1만 6천500원)

 "두 번째 수술 도구가 치워졌을 때 이제는 수술이 끝났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맙소사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고 그것은 훨씬 더 끔찍했어. 오. 하느님! 나는 수술칼이 내 가슴뼈에 달려들어 샅샅이 긁어내는 것을 느끼고 또 느꼈어!"(107쪽)

 불과 150여 년 전만하더라도 참고 버티는 것 외에는 수술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고대에는 환자의 머리에 나무통을 씌우고 `아몬드가 부서질 정도`로 세게 두드려서 환자를 기절시킨 뒤 수술을 하기도 했다.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방법도 사용됐다.

 하지만 심하게 두들겨 맞거나 목을 졸리고 나서도 의식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더 나쁜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환자가 사망하는 경우다.

 인류가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난 것은 19세기 들어 마취제가 발견되면서다.

 영국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는 1800년 아산화질소를 잔뜩 들이키고서 "점점 환희로 충만해졌고 외부 세계와의 모든 연결 고리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얻었다. 데이비의 새로운 발견은 이후 에테르, 레테온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고 50년 뒤 의학계에 마취제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최근 국내 번역된 미국 과학ㆍ의학 전문 저술가 존 퀘이조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는 의학계의 혁신적인 10가지 발견을 흥미롭게 전하는 책이다.

 발견 목록에는 마취를 비롯해 히포크라테스와 의학의 탄생, 공중위생, 세균, 엑스선, 백신, 항생제, 유전과 DNA, 정신질환치료제, 대체의학이 포함됐다.

 여기에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고통을 경감시킨 것, 의술을 변화시킨 것, 세계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킨 것 등 세 기준에 따라 10가지를 골랐다.

 이미 여러 책에서 다뤄진 주제지만 저자는 발견에 이르기까지 노력한 수많은 인물의 노력을 꼼꼼하고 재미있게 다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메디치. 376쪽. 1만 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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