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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매일
  • 승인 2012.11.0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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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철학 ·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된장찌개에서 스피노자 철학 떠먹기

`식탁 위의 철학`
신승철 지음
(동녘… 1만 5천원)

 영양 가득하고 맛깔나는 철학자의 식탁을 만난다.

 된장찌개는 콩이 메주로, 메주가 다시 된장으로 변해 만들어진 발효 음식이다.

 이러한 `변용` 과정을 철학에 적용한다면 어느 쪽에 가까울까.

 동국대, 경희대 등에서 철학을 가르치며 철학서를 집필해 온 신승철 씨는 식생활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시도한 책 `식탁 위의 철학`을 펴냈다. 저자는 된장찌개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떠올렸다.

 콩이 된장이 되는 "부드러운 흐름"은 스피노자가 내놓은 `변용` 개념에 비유된다는 것.

 스피노자의 대표작인 `에티카`에 따르면 변용이란 신체가 외부의 물체를 만나 딱딱하거나 부드러워지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사상적 배경과 이론을 소개하고, 된장찌개에 담긴 변용의 미학을 일상에 적용해 사회적 소수자의 처지를 돌아보는 `사랑과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식생활 속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찾아내기도 한다.

 라면을 주식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숨 가쁜 삶에서 속도 문명의 폐단을 짚어내고, 인스턴트커피 한잔에서는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이처럼 김치, 짜장면, 소주, 마늘 등 20가지 먹거리를 소재로 라이프니츠, 프로이트, 들뢰즈 증 철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사상가의 이론을 에세이 형식의 아기자기한 문체로 풀어낸다.

 그는 서문에서 "부엌은 음식의 흐름, 물의 흐름, 불의 흐름, 쓰레기의 흐름이 있는 온갖 흐름의 공간이며, 계약 관계, 욕망 관계,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관계의 공간"이라고 규정하고 "삶이 곧 철학이며, 일상에서 던지는 문제의식이 곧 철학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동녘. 265쪽. 1만 5천원.

잘린 발목 딛고 절벽에 선 절박함

`불가능한 종이의…`
이원 지음
(문학과지성사… 8천원)

 두 발목이 잘렸을 때의 심정은 실제로 당해보기 전에는 끝내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똑바로 서는 것이 몇 안 되는 특기일지 모르는 인간에게 `발목이 없다`는 상상은 낭패감 그 자체다.

 시인 이원은 새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에서 읽는이를 수 없이 낭패 속으로 몰고 간다. 시집에는 잘리는 발목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똑바로 설 수 없고 빗금처럼 서게 되는 절박함을 환기시킨다.

 "저는 현실에서 좀 떨어진 편이에요. 현실에 발이 잘 안 디뎌진다는 것이 괴로울 때도 있었죠. 그러다 다시 땅에 닿지 못하겠다고 느꼈을 때… 그 때는 땅에 발을 딛는 것이 선택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였어요. 이제는 닿을 수 없구나, 절실함 말고는 없구나, 빗금으로 살 수밖에 없구나…."

 빗금의 삶이 심정적인 것을 넘어 실제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모퉁이에 스승 오규원의 죽음이 있었다. 5년 전 스승이 돌아가시던 그 해에 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의 첫머리에 이원은 `제 언어의 맨 처음에 계시는 오규원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라고 썼다. 별다른 일화 없이도 각별한 스승이 사라진 자리의 한기를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2년간 시를 쓰지 못하다 시인은 절벽을 세웠다. 떨어져서 삶과 죽음을 가르려던 것이었다면 칼은 발목이 아니라 복부나 심장을 겨눴을 것이다. 솟아난 절벽은 벌판에선 감지되지 않던 것을 일러줬다.

 시집엔 자화상이 세 차례 나온다. 반쯤 타다 남고(32쪽), 살가죽이 벗겨지고(65쪽), 뼈만 남은 자화상(133쪽)이다. 빗금의 자세로 살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을 때의 자화상이다.

 "반쯤 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반쯤 타지 않은 그 자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직시하는 것이죠. 긍정도, 부정도 아니라고 하면 사람들은 해탈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시해서 정확하게 보는 데에는 `좋다 나쁘다` 판단이 끼어들 틈이 없어요. 세계에 대해서 희망이든 절망이든 한쪽을 주지는 않으려고 해요."

 문학과지성사. 172쪽.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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