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3:52 (목)
대문 열면 500년전 선비의 체취 흘러나와 `물씬`
대문 열면 500년전 선비의 체취 흘러나와 `물씬`
  • 최경인 기자
  • 승인 2013.01.30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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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고택을 찾다 4 함양군 지곡면 개평 한옥마을

 돌담길 돌아들면 여기는 `조선시대`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들려와

 시간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시간은 우리를 둘러싼 풍경과 기억을 야금야금 지워버린다. 주변을 둘러보라. 지붕 낮은 옛집들과 거기에 담긴 추억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그런데 시간의 거센 겁박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오롯이 각인된 기억들을 지켜낸 곳이 있다. 시간이 멈춰 버린 바로 이곳 지곡면 도숭산 자락에 자리한 개평마을이다.
 선비의 고장 함양. `좌안동 우함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 따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정신문화의 수도`로 불리는 안동에 견줄 만큼 함양에는 유서 깊은 향교와 정자, 누각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100가구 191명이 어울려 사는 지곡면 개평마을은 성리학의 대가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탄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가옥의 대부분이 한옥인 이 마을은 시간의 흐름에서 비껴선 것처럼 보인다.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60여 채의 기와집들과 마을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골목길이 마치 민속촌에라도 찾아간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개평이라는 이름은 내와 마을이 낄 `개(介)` 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 개평마을 표지석이 서 있는 마을 입구에서 보면 좌우로 두 개울이 하나로 합류하고, 그 사이로 개평마을이 들어서 있다. 마을과 잇닿아 넓은 들판이 펼쳐져 `개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개평마을은 14세기에 하동 정씨와 경주김씨가 들어와 살다가 15세기에 풍천노씨가 합류해 마을을 이뤘다. 현재는 김씨를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정씨와 노씨 일색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눈에 띄는 몇 집들이 있는데 짧게는 100여 년 전, 길게는 500년 쯤 전에 지어진 것들이다. 그중 개평마을을 대표하는 집은 누가 뭐래도 일두 정여창 고택이다.
 정여창(1450∼1504) 선생은 조선조를 대표하는 성리학의 대가이다. 전국 234개 향교와 9개 서원에서 받들어 모실 정도로 그는 조선 성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여창고택은 국가지정민속자료 제186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대하드라마 `토지`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이 집은 정여창 선생 타계 1세기 후, 생가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우람한 솟을대문이 집의 크기를 말해준다. 안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된 이 집은 곡간만도 10칸이나 된다.
 정여창 선생의 후손들은 대대로 과객의 접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흥선대원군과 추사 김정희도 한동안 머물렀다고 전한다. 여러 개의 중문을 뒀는데, 집 오른편에 자리한 일두홍보관으로 드나드는 곳은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라서 눈에 띈다. 정여창 선생의 기를 받아서일까. 개평마을은 예부터 학자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겨우 100가구 남짓한 이 마을에서 대학교수만 150명이 배출됐다고 하면 믿을지 모르겠다

 풍천노씨 대종가도 둘러볼 만하다. 경남문화재자료 제343호로 지정된 집이다. 15세기에 풍천노씨가 입향하면서 지었던 집터 위에 1824년 다시 지은 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70여 년 전 수리한 것이다. 마당의 일부를 정원으로 삼았는데, 그것은 현재의 주인이 살면서 변화를 준 것으로 보인다. 풍천노씨의 집 중에는 노참판댁 고가도 있다. 구한말 우리나라 바둑계를 휘어잡으며 최초의 국수(國手) 자리에 오른 사초 노근영 선생의 생가다. 어느 한구석 손대지 않은 이 집은 경남문화재자료 제360호로 지정돼 있다.
 정여창 선생의 일가로 눈을 돌리면 1830년대 지어진 하동정씨 고가와 오담고택이 있다. 하동정씨 고가는 1880년에 지어진 것으로 경남문화재자료 제361호에 이름을 올렸다. 건립 당시에는 사대부가답게 사랑채를 비롯해 그 규모가 컸으나 현재는 작은 사랑채와 안채, 대문간채만 남아 있다. 오담고택은 조선 말엽 문장가였던 오담 정환필 선생의 집이다. 시도유형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돼 있다. 사랑채는 1838년, 안채는 1840년에 지어졌다. 조선 후기 양반가의 건축양식과 가구기법을 연구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평마을이 여느 옛 마을과 다른 점은 이들 고택들을 둘러보는 데 별다른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은 대문을 걸어놓게 마련인데, 개평마을에서는 그런 곳이 많지 않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을 활짝 열어둔다. 누구라도 와서 구경하고 가라는 배려다. 마당 한편을 서성이고 있으면 "누구신데 그러느냐"고 한소리 할 법도 하건만, 으레 구경 온 사람이거니 하며 주인행세를 하지 않는다. 외려 "마음껏 둘러보다 가시라"며 한쪽으로 피해주는가 하면,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며 권하는 개평마을 사람들이다.

 언덕서 내려다보는 조망 일품
 돌담길을 따라 고택을 둘러보다보면 일두 선생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평소 정여창 선생이 산책을 즐기던 코스를 재현한 것이다. 이 산책로는 참 운치가 넘치는 길이다. 언덕바지의 소나무군락을 지나 대숲을 스치고, 논두렁도 걷는다. 소나무군락은 풍수지리사상에 의거해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수령 300∼400년 생으로 10∼15m 높이의 적송들이다. 현재 개평리에는 이러한 소나무들이 100주 정도 남아 있다. 소나무 중에는 특별한 것들도 있다. 시도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된 소나무다. 약 500년 수령의 성황나무 역할을 하는 당송이다. 광복 이후까지도 주민들이 이 나무에서 당제를 지내며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한편, 소나무군락지가 자리한 언덕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선 개평마을이 한눈에 다 보인다.
 이 정겹고 편안한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면 누구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된다.
최경인 기자 kichio@kndaily.com

 △길잡이: 대전통영간고속도로 지곡IC→24번 국도→지곡면사무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지곡보건소 지나 개평교 건너면 개평마을
 △먹거리ㆍ잠자리: 개평마을에 함양정일품농원(http://www.jung1poom.kr, 1577-8958)이 있다. 일두 정여창 선생의 16대 손이 운영하는 곳으로 한옥에서 숙박을 하며 식사도 해결 할 수 있다. 숙박은 2인실 기준 5만원이다. 이 농원은 전통식품연구소도 운영하는데, 그 덕분인지 식사 때 나오는 장아찌와 된장박이매실, 죽순된장국 등이 아주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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