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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줄 것인가
누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줄 것인가
  • 조현
  • 승인 2013.02.27 1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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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현 인제대학교 교수ㆍ보건과학정보연구소장
 우리 사회에서는 매해 새로운 용어가 하나의 대중어로서 회자되고 있다. 일종의 용어 패션이다. 십 수년 전에는 IT 산업에서 파생된 용어, 예를 들어 콘텐츠,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등이 유행어로 번진 적이 있다.

 2ㆍ3년 전에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의 번역 출간과 함께 ‘정의’란 말이 우리 사회를 광풍처럼 휩쓸었다.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내로라하는 많은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정의’를 정의하기에 분주했다. 그래서 남긴 것은? 출판사의 두둑한 수입, 그리고 서가에 으스대며 정의롭게 꽂혀있는 책 외에는 아쉽게도 아무것도 없다.

 세월과 함께 패션은 또다시 바뀌어 작년부터는 ‘힐링’이란 말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어느 연예계의 프로그램 제목에 힐링이란 말이 사용된 후 이 말은 대중어의 차원을 넘어 일상어의 위치에 까지 이르게 됐다. 한동안 유행했던 ‘웰빙’이란 말을 완전히 눌러버렸으며 이제는 광고전단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힐링 피부 마사지, 힐링 여행, 힐링 마케팅, 심지어는 힐링 음식까지 소개되고 있다. 아 참, 또 하나. 대선이 끝난 후 실망한 야당 지지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힐링 허그(hug) 투어’ 라는 것도 있었다.

 유행은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사회적 현상들이 시의성 있게 비춰지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웰빙’이라는 용어는 삶의 질을 의식하게 된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정의’라는 말은 사회의 무자비하고 교활한 게임 법칙에 대한 우리의 항거를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힐링이 지금처럼 유행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 모두 약간씩은 지쳐있다. 세상의 모진 벽에 머리를 맞대면서 자신과 세상에서 최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행동으로 하루하루를 투쟁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늘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세상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숨기를 원한다. 이 정도로 끝나면 ‘휴식’, 아니 더욱 멋지게는 ‘릴랙싱(relaxing)’이란 말이 유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쳐있는 상태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여기저기에서 상처를 받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상처들의 일부는 우리 각자의 내밀한 개인사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개인사와 동일한 축에 우리 사회의 일반사가 같이 물려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전체적이고 균형잡힌 개체로 발전하는 대신, 정의 규범이 깨어진 사회에서 분화와 분열 속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결국은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대는 노숙자가 돼간다.

 직장이 없어 갈 곳 없는 젊은이들에게 기껏해야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로 위안을 삼으라 한다. 좁은 어깨를 잔뜩 웅크린 소시민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난파선에서 손잡이를 놓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긴장의 연속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연결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구석에서는 지도층이라는 자들이 뒤틀어진 세계에서 자신들의 부정한 목적을 위해 자신들의 이상한 논리를 아리송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고 있으며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누가 이 상처를 치유해줄 것인가? 결국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도 절대적인 사회적 정의와 규범이 존재한다는 믿음의 끈을 놓고 싶지 않다. 아직은 사회적 신뢰와 진정성의 모범들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만 실존의 냉혹함과 맞짱 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출발한 새 정부는 이러한 믿음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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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2013-03-11 16:23:22
우주중 수 많은 생명들은 모두 참(眞).사랑(善).관용(忍)의 성질이 커질 때 생기발랄해지지만, 반대로 거짓(假).악(惡).투쟁(鬪)의 성격이 커지면 암울하고 패괘적으로 변하며, 결국 폭발.소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가 치유하기보다는 개개인이 이 眞善忍에 대한 확고한 가치기준을 정립한다면 어느새 건강.발랄하게 회복되어 있을 것이며, 지금 우리는 폐기해야할 투쟁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과잉 둔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