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길 걷다
문득 멈춰선 발길
햇살은 나뭇잎 사이
실바람에 반짝이면
그리워
못 잊을 얼굴들
환영(幻影)처럼 흔들린다.
나직한 목소리로
그 이름들을 부르다가
푸른 하늘 우러르며
남천(南天)을 바라보니
한 조각
하얀 구름이
산정(山頂)에 걸려 있다.
돌아보니 아득한 세월
걸어온 길 고단하다
포근한 풀밭 위에
팔베개하고 누워본다
벗어둔
낡은 신발이
머리맡에 놓여 있다.
<약력>
경북 청도 출생
1979년 <시문학> 등단
성파시조문학상 수상, 낙동강문학상 수상
시조집 : ‘이 찬란한 아침에’ 외 2
동시조집 : ‘시냇물과 종이배’
초서(草書)로 써 놓은 한문 문장은 좋은 내용일지라도 읽어 낼 수 없다면 죽은 글이나 다름없다. 뛰어난 기교와 번듯한 시어를 골라 썼더라도 보편적으로 와 닿지 않는 시라면 초서 같은 경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시어로 빚어 놓아 편안하다. 음미하면 그냥 그대로 부드럽게 가슴에 와 닿는다.
시인은 인생의 험산 산길을 숨 가쁘게 걷다가 이제는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로운 자리에 와 있다. 못 잊을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고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볼 수 있다. 그러면서 산봉우리에 걸린 하얀 구름을 통해 덧없는 인생을 느끼기도 한다.
아득한 세월, 고단한 길을 걸어온 시인은 머리맡에 벗어둔 낡은 신발을 빌려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다. 다들 이렇게 살아온 뒤 돌아보게 되는 게 인생인 모양이다.
어디쯤 와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천성수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