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40 (금)
한 주를 밝히는 시 / 벌초
한 주를 밝히는 시 / 벌초
  • 배종관
  • 승인 2013.08.18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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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종관(1958~) -

   큰놈을 앞세우고 칡넝쿨 헤쳐 가니
   노송도 반가운지 까치 불러 인사하네
           그립다

          종아리 치시던

   아버님의 얼굴이.

   내가 올 줄 알았는지 바람도 살랑살랑

   웃자란 잡초들만 침묵으로 돌아앉고

   잠드신

   아버님 얼굴

   살금살금 낫질한다.

   아버님 가신지가 어느덧 이십여 년

   가시던 그때처럼 아쉬움이 너무 많아

   들린 듯

   기침 소리에

   돌아보고 또 본다.

 약력

 김해 장유 출생

 <부산시조> <현대시조> 신인상

 시조집: 투명한 물소리에 떨리는 산 울음

영일우레탄 대표

 

 아무리 덥다고 하지만 여름은 가을에 자리를 내어주기 마련이다. 며칠 전부터 아침과 저녁의 기운이 다르다. 더위가 조금씩 기가 꺾이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번 주 23일이면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처서다. 이때가 되면 풀도 더 자라지 않아 벌초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추석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인은 큰아들을 앞세우고 벌초하기 위해 잠들어 계신 아버지의 무덤을 찾고 있다.

 종아리 치시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을지라도 아버지를 찾아뵙는 게 좋아서 노송과 까치 그리고 바람까지 시인의 기쁜 마음에 동참시키고 있다.

 하지만 말없이 누워 계시는 아버지의 무덤 위에 웃자란 잡초를 베는 시인의 모습은 경건하고 조심스럽다.

 돌아가신 지가 20여 년이지만, 벌초를 하고 돌아서는 시인의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는다. 기침소리 들린 듯한 환청에 내내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마음이 짠하게 느껴진다. 아버지 계시지 않은 사람들은 시인의 이런 마음에 고개 끄덕이며 함께 그리워하지 않을까 싶다.

<천성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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