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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첫 ‘담배 소송’ 가시화
건보공단 첫 ‘담배 소송’ 가시화
  • 연합뉴스
  • 승인 2013.08.2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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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 밝혀지면… 소송액 조 단위 훌쩍 넘어갈 듯
▲ 건강보험공단이 진료데이터 분석을 통해 담배로 인한 진료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ㆍ캐나다 주 정부 성공 사례 큰 도움
소송 승패 담배회사의 잘못 입증 여부 달려
美 미시시피 주 4년간 공방 25년간 230조 배상금 받아

 건강보험공단이 결국 ‘담배 소송’에 나설 태세다. 건보공단은 27일 방대한 진료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담배의 건강피해를 입증했다고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료비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보공단의 담배 소송이 실제로 이뤄지면 이는 국내 공공기관으로서는 첫 사례가 된다. 또 앞서 미국과 캐나다 주 정부의 담배 소송 사례를 볼 때 최종 소송가는 조 단위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가 예상된다.

 ◇ 건보공단 담배 소송의 법적 근거는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 근거는 국민건강보험법의 구상권 청구 규정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8조는 제3자의 행위 탓에 건강보험 진료비가 쓰였다면 공단이 그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얻는다고 돼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의 건강 피해 증거자료를 확보했기 때문에 건보공단이 가입자를 대신해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는 마련됐다는게 공단의 판단이다.

 소송이 진행된다면 그 승패는 담배회사의 과실을 어느 정도까지 입증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건보공단은 담배 제조상 결함 등 제조물책임을 따지거나 정보은폐와 중독성 강화 첨가물 투여 같은 행위도 추궁할 수 있다. 담배회사가 소비자기본법에 정한 사업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면 이 역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제조물책임, 고의 불법행위, 소비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 등 그 어느 경우에도 담배회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입증하기란 매우 어려운 과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실제 소송한다면 공공기관으로는 최초

 현재 국내 담배 소송은 대법원(대법원 2011다22092)과 고등법원(서울고법 2012나19880)에 각 한 건이 계류중이다.

 대법원에 계류된 사건은 1999년 흡연피해자 6명과 그 가족 총 31명이 제기한 것으로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하급심은 일부 원고에 대해 흡연과 폐암과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했지만 담배의 결함과 KT&G의 불법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2005년 폐암으로 사망한 경찰공무원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의 경우에도 역시 원고가 1심에서 패소했다. 유족은 공무원 공단에 보상을 요구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흡연이 사망의 주원인이라며 패소하자 담배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잇단 패소에서도 알 수 있듯 개인이 거대 담배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는 무척 버거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담배회사는 소송 비용을 키우는 전략으로 개인 원고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써왔다는게 법률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원고가 공공기관인 건강보험공단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가입자 개개인의 평생 진료기록이라는 방대한 데이터를 강력한 무기로 갖고 있고 법률적인 전문성에 있어서도 담배회사에 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1990년대 이후 주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결과 승소하거나 합의로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 소송가 얼마나 될까

 건보공단이 실제 소송에 나선다면 소송가가 얼마나 될지도 관심거리다.

 건보공단이 이날 공개한 흡연의 건강영향 분석 연구 결과를 보면 흡연으로 발생한 진료비는 2011년 기준으로 1조 6천914억 원에 이른다.

 건강 피해액을 기준으로 가입자 대신 구상권을 행사한다면 최종 소송액은 조 단위의 천문학적 금액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규모는 공단이 어떤 가입자의 피해를 기초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지만 비슷한 근거로 소송을 낸 미국과 캐나다 주 정부 성공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다.

 미국은 1994년 미시시피주 정부를 시작으로 1997년까지 50개 주 정부가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 관련 질병 치료비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긴 법정공방 끝에 원고인 주 정부와 담배회사는 재판상 화해의 효력이 있는 합의에 도달했다. 이 합의의 결과로 담배회사는 25년간 주 정부에 2천60억 달러(약 230조 원)을 배상하게 됐다.

 캐나다에서는 2001년 브리티시컬럼비아주가 담배 회사에 의료비 반환청구소송을 냈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이 소송에 앞서 법까지 개정하는 결단을 내렸다. 뒤이어 뉴브런스윅, 온타리오, 뉴펀들랜드 앤드 래드라도, 앨버타, 사스캐처원, 퀘벡, 노바스코시아 등이 법 개정과 소송 대열에 합류했다. 마침내 지난 5월 온타리오주가 500억 달러(약 56조 원)을 요구한 소송에서 승소했다.

 이날 건보공단의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정미화 변호사(남산법무법인)는 “인지 비용 등을 고려하면 초기 소송가는 크지 않지만 소송 추이에 따라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며 “담배회사의 과실을 부분적으로만 입증한다고 해도 손해배상 규모는 엄청난 액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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