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1:17 (금)
甘露門 (감로문)
甘露門 (감로문)
  • 송종복
  • 승인 2013.09.03 2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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甘: 감 - 달다 露: 로 - 이슬 門: 문 - 문
▲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 수석부회장
`감로의 문` 통과하면 현 정국을 이해할까

 상응부경전(相應部經典) 61,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19에 의하면 불타(佛陀: 석가모니)가 정각(正覺)을 얻은 뒤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의 일이었다. 그는 아직도 네란자가(尼蓮禪河: 니련선하) 강가의 보리수 아래 정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의혹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지금 내가 깨닫고 있는 것은 너무나 미묘해서 쉽사리 사람들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한다 해도 사람들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다만 피로곤비(疲勞困憊)할 뿐이 아닐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불타의 마음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것은 불타에게 있어서 하나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불타의 깨달음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납득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타의 가슴속에만 파묻혀 있다가 그의 죽음과 함께 지상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았던가! 이른바 불타가 중생들에게 그의 교법을 설명하기 위해 지어낸 `범천 권청(梵天勸請)`의 설화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설법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불타를 보자, 하늘에 있던 범천은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라고 우려해 지상으로 내려와 불타 앞에 이르러 예배하면서 말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說)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는 눈에 티끌이 적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불타의 교법을 들을 수 있다면 깨달을 것입니다." 범천(梵天)의 권청(勸請)을 들은 불타는 비로소 사람들에 대한 `자비심`을 일으켜 다시 한 번 심안으로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았다. 그때 불타의 마음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모습을 불경에서는 못 속의 연꽃에 비유해 설명하고 있다. 연못 속에는 푸른 연, 붉은 연, 흰 연들이 뒤섞여 자라고 있었다. 어떤 연은 진흙탕 속에 묻힌 채 꽃봉오리를 맺고 있는 연, 어떤 연은 수면에 떠서 꽃을 피우는 등이 있었다.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갖가지 모습을 관찰한 불타는 마침내 설법 전도의 결의를 굳히며 말했다. "이제 나는 감로의 문(門)을 여노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릴지어다." 이같이 미묘한 경지를 이해시키는 장(場)을 감로문(甘露門)이라 하며 그의 대표적인 교육장을 감로정사(甘露精舍)라 한다. 이렇듯이 우리가 불타의 깨달음인 불경을 만 번이나 읽어봐도 잘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엊그제 모 방송사의 보도에 의하면 `감로의 문`을 몰라서 그랬는지, 이를 알았으면 즉시 시정보도가 나왔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한자의 `以A爲B`는 즉 A를 B로 섬긴다(여긴다)로 해석돼야 한다. 문제의 액자 `以民爲天(이민위천)`의 해석은 `백성을 하늘같이 섬긴다`라고 했다. 그런데 보도의 한자에는 `以民僞天(이민위천)`으로 했다. 즉 `백성을 하늘같이 속인다`라는 의미가 되니 말이다. 환언하면 위(爲: 섬기다, 여기다)가 위(僞: 속이다, 거짓이다)로 보도됐다는 것이다. 이 같이 불타의 피곤한 감로문을 위해서는 감로정사가 있어야 됨을 언급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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