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2:20 (금)
한 주를 밝히는 시
한 주를 밝히는 시
  • 김창근
  • 승인 2013.10.13 2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연고 묘지

-김창근(1958~)

  쓰러진

  빗돌 앞에

  밀잠자리 삼배하고

  억새풀

  흰 머리 풀어

  한나절 흐느낀다

  누구도

  찾아온 적 없어

  무너진

  집 한 채

 약력

전북 장수 출생

2007년 : 현대시학 등단

작품집 : 푸르고 질긴 외뿔

 쓸쓸해지고 생각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열매가 익어 떨어지기 시작하고 잎도 하나둘씩 물이 들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하늘이 맑고 높아서 우리의 의식도 맑고 높은 하늘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명징한 계절인 가을, 산에 오르면 눈에 드는 것들이 달라져 가는 빛깔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더러는 예사로 지나쳤던 것들이 의미가 되어 오랫동안 우리의 눈길을 붙들기도 한다.

 시인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키가 깎여 흔적을 지워가고 있는 무덤,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을 조용히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언뜻 보기에는 시각적으로 포착한 무덤의 외형만 노래하고 있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어떤 삶을 살다간 사람의 무덤이며 왜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우리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결국 저렇게 묻혀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쓰러져 가는 빗돌에 앉았다 떴다를 되풀이하는 잠자리가 삼배를 하는 것 같고, 머리를 푼 하얀 억새가 흐느끼는 것 같다고 본 시인의 눈길이 깊고 허허롭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 없이 삭아가고 있는 무덤이 더 쓸쓸해 보이고 서글픈 느낌으로 다가온다.

 봉분이 무너져 삭아가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며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이 시인처럼 우리도 이 가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천성수 시조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