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밤을 뒤척이던 그 유월은 길었습니다
스물일곱 해를 건너 또 여름을 지나서야
멀어진 기억의 저편 아버지를 부릅니다
삼 형제 별을 찾다 까무룩 눕던 무릎
물수건 밤새도록 이마에 얹던 손길
내 아이 사랑하는 일 그대로 따랐습니다
다 자란 딸 친구들 손으로 내려온 날
일일이 챙기시던 먹는 일 이부자리
베푸는 마음만으로 행복이라 여기셨지요
자투리 천 귀를 맞춰 만들어 주신 편지함
스무 살 제게 주신 코티분 남색 코트
넉넉한 인정만으로 봄들처럼 살라셨죠
넘치는 사랑 겨워 짜증 내고 투덜대고
아버지 아픈 눈물 헤아린 적 있었더뇨
외동딸 못된 버릇이 가시로만 걸립니다
갑자기 누우셨던 사흘 낮밤 하얀 자리
불러도 애타 불러도 먼 길 홀로 떠나신 뒤
못 갚는 사랑 탓으로 늪이 하나 고입니다
봉분은 낮아지고 세운 비는 메어지고
무덤가 제비꽃만 초롱초롱 눈 밝은데
마르는 잔디 어르며 눈물로만 부릅니다
약력
부산 출생
1974년 : 부산교위주최 중등교사 시조짓기 1, 2회 대표상
1986년 :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초회 추천
1988년 : 시조문학 천료
작품집 : `귀엣말 그대 둘레에` `숲 가까이 산다네` `얼음꽃` 등
수상 : 성파시조문학상, 한국시낭송상 수상
(현) 부산시조시인협회 부회장,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전) 신라중학교 교장.
개개인의 기억 속에 들어 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내용은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감정은 대체로 비슷할 것이다. `늦게 쓴 편지`라는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시인은 나이가 든 뒤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언젠가 다들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만 내 핏줄의 근원인 아버지를 떠나보낸 일은 항상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인가 보다.
무성했던 것들이 바래지고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셔도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나실 것이다. 우리도 또한 아버지가 떠나시듯 그 언젠가는 바래져서 떨어지고 사라져 갈 것이다.
둘러보고 돌아보면서 가을을 짙게 느끼게 되는 나날이다. 자연의 섭리지만 떠난 사람들이 더 그리워지고 더 보고 싶어진다. 아쉽고 애잔한 마음이 가을 낙엽을 닮아가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천성수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