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06:22 (목)
還鄕女(환향녀)
還鄕女(환향녀)
  • 송종복
  • 승인 2013.11.19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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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 (사)경남향토사/수석부회장
국가에 대한 충절 `환향녀` 욕설로 사용하면 안 돼

 일명 `환향년, 화장년, 화냥년` 이라고도 부른다. `경국대전` `이전(吏典)`의 경관직에는 `정절을 잃은 부녀자의 가문은 자손 대대로 문과에 응시하거나 요직에 등용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인조실록` 중에 인조는 `포로로 잡혀갔던 여자들은 이미 본심에서가 아니었고 죽을 수도 없었다`며 "더 이상 재론하지 말고, 환향녀와 이혼하는 것도. 환향녀를 버리고 재혼하는 것도 불허한다는 것이 조정의 공식입장이다"라 했다. `효종실록` 중에 사헌부에서 `(환향녀와) 이혼하지 말라는 법을 폐지하고, 재혼을 허락해 주십시오`하니, 이에 효종은 `환향녀와 이혼 및 다른 여자와의 재혼`을 금한 법을 폐기했다.

 전란을 만난 여성들은 남자 못지않게 충성했다. 남편이 국록을 받으면서 오랑캐의 종이 된 것을 보고 상투를 잘랐다는 여인도 있고, 혼인한 지 두 달 만에 전쟁을 만나 물에 빠져 죽었지만 남편은 그 사실도 모르고 아내를 의심하고 탄식하는 이도 있었다. 또 한 여인은 강화도 마니산 바위굴에 숨었다가 적벽에서 투신, 또는 비참한 몰골로 원한을 토로한 여인도 있었다. 따라서 `나라의 수치에 충신으로 의(義)에 죽은 사람은 하나도 없고, 매서운 정조를 보인 것은 부녀자뿐이니 이 죽음은 영광된 것인데, 누가 `정절`을 논하고 꾸짖는단 말인가. 못난 임금, 못난 아비, 못난 남편을 만난 여인들이 하는 말이다.

 병자호란 때 절개를 지키다 죽은 부녀자가 모두 126명인데, 해주에 사는 정득주의 아내 김씨는 적의 핍박을 당하자 그의 딸을 물에 던지고 아들을 업고 물에 빠져 죽었고, 역시 양인 임순립의 아내는 적을 만나 쫓기자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아무개의 아내는 물에 빠져 죽는다`고 외치고 죽었다. 강취규의 아내는 적병을 만나자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땅에 엎드린 채 나무뿌리를 잡고 버티니, 적이 칼로 그의 손을 잘랐으나 끝내 일어나지 않으니 그의 등을 찔러 죽였다.

 조선의 남성들은 훌륭한 인물이 없거나, 용기 없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의 흥망이 걸려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결코 용감하지 못했고, 비겁하게 항복하는 바람에 여성들만 피해를 봤다. 전란에 패배하면 피해 보는 것은 주로 여성인데, 이는 남성의 무기력에서 오는 것이다. 전쟁의 재물로 억울하게 강제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고 어렵게 돌아 온 여인들에게 그야말로 "고향에 잘 돌아왔다"는 뜻의 뼈아픈 환향녀(還鄕女)라는 명칭을 붙여 줬는데, 이 말을 왜곡해 `화장년` 또는 `화양년`으로 쓰는 것은 역사에 무식한 자의 소치이다. 이 모두 국란을 당한 역사에서 연유된 것으로 병자호란 때의 `환향녀`는 일제강점기의 군대 `위안부`와 같은 맥락에서 피해 입은 여성의 사례이다. 따라 욕설로 입에 담지 말아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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