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40 (금)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에콰도르3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에콰도르3
  • 도용복
  • 승인 2013.11.28 2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말 재래시장 온갖 동물 판매
▲ 에콰도르 수도 끼또 시내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 공연팀이 팬터마임 공연을 하고 있다.
‘인디오’는 식민시대 원주민 낮춰 부르는 말

 고향집 정진수 사장님과 송어회로 식사를 하고 끼또 시내의 예술학교에 들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건물 중앙에 마련된 조그만 광장에는 학생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었다. 2년제 학교로 운영되고 있는 이 학교는 거의 모든 장르의 기예를 배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대학교처럼 클래식 음악, 미술 등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서커스에서나 볼 수 있는 기예를 연습하기도 한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 여기저기서 디아보로라고 하는 홈이 팬 팽이를 줄로 걸어 넘기는 묘기를 부리고 있고, 봉, 원반, 공 등의 다양한 저글링, 아크로바틱과 같은 단체 마스게임 등 약간의 공터만 있으면 나름대로의 다양한 기예를 연마하고 있다.

 2층의 강의실에선 기타 연습이나 연기 지도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 인형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젖병을 물리고, 얼굴을 닦아주고 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아마도 아기 보모 수업도 있나 보다. 선생님의 지도가 있는 강의실도 있지만 수업이라기보다는 학생들 스스로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연습을 하는 모습이 더 인상적이다. 취업과 스펙을 위해 꿈도 없이 도서관과 강의실만 왔다갔다하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에 비하자면 이곳 학생들의 표정에는 기쁨과 열정이 묻어 있다.

▲ 원주민 도시인 오타발로에서 열리는 남미 최대의 재래시장. 원주민들이 트럭에서 가축을 내리고 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대통령궁 앞 광장에서는 공연 무대가 펼쳐졌다. 사회자가 간단한 소개를 하는 말을 들어보니 페스티벌이 있은 모양이다. 처음 출연한 팀은 여성과 남성 두 명으로 구성된 팬터마임인데 남성이 꼭두각시 인형 역할이고 여성이 주인인 듯하다. 일반적으로 희극을 주제로 한 판토마임과는 달리 꼭두각시의 비애를 표정과 몸짓 만으로 표현하는데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다음엔 알록달록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나타난 키 큰 남자가 등에는 북과 심벌즈를 메고 발로 박자를 맞추며 색소폰과 기타, 목에는 하모니카까지 걸고 다섯 가지 악기를 다룬다. 자주 펼쳐지는 공연이 아닌지 공연시간이 길어져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도 사람들은 자리를 뜰 줄을 모른다.

 이곳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오타발로다. 오타발로는 인디헤나의 도시로 수많은 인디헤나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전통복장을 하고 스페인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이지역의 인디헤나들은 대부분 스페인어와 함께 자신들의 언어인 키추아어를 사용한다.

 “중남미 원주민들을 흔히 인디오라고 말하는데, 인디오라는 말은 식민시대에 이곳 원주민들을 폄하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원주민이라는 말은 인디헤나 라고 해야 맞지요. 우리나라도 식민시대에 조센진이라고 불렸잖아요” 김 집사님의 자세한 설명에 문화적, 역사적 지식 없이 생길 수 있는 실수를 미리 방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디헤나들은 저개발국 에콰도르에서도 최극빈층에 속한다. 인디오들은 에콰도르 인구의 25%를 차지하지만 스페인 식민지 시절 안데스산맥으로 숨어 들어간 뒤 고산지대의 척박한 산비탈에 밭을 일구거나 가축을 키우며 살아왔다.

 오타발로는 끼또에서 차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안데스 산맥과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주말에 열리는 가축시장이 유명한 곳이다. 인디오들의 공예품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을 파는 시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타발로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까지 모여 든다고 한다.

 시장이 주말에만 서기 때문에 토요일에 미리 가서 근처에서 자고 새벽 5시에 가축시장으로 찾아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시장은 벌써 야단법석이다. 인디오 재래시장이다 보니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많고 길 전체가 사람과 가축으로 바글바글하다. 공간이 있는 곳이면 좌판을 펴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재래시장에서 필자가 원주민과 함께 전통음식인 돼지고기 수프를 먹고 있다.
 동물 시장이라는 것을 알리는 어떤 표지판도 찾아볼 수 없지만, 사람들이 줄로 묶어서 데리고 있는 동물들을 보면 이곳이 동물시장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가축으로 키울 수 있는 동물이면 모두 다 거래가 되는 것 같다. 소, 돼지, 염소, 양, 말, 토끼, 닭, 오리 심지어 에콰도르 사람들이 식용으로 먹는 기니피그까지 거래가 된다. 팔려가는 신세를 아는지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사람들의 소리에 넋이 나갈 정도다. 사육된 동물들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가축들을 거래하다 보니 줄로 묶어서 끌고 온 동물들의 숫자도 한정돼 있다. 공간이 있는 곳이면 좌판을 깔고 물건을 팔고 있고 평소와는 달리 장터의 인디헤나들에겐 활력이 넘친다.

 시장 한 켠에는 먹을거리를 파는 곳도 있다. 동물시장에서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출출해 지기 마련. 숯불에 구운 갖가지 바비큐 요리가 눈길을 끌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메뉴는 돼지를 푹 고운 스프로 우리나라의 곰국과 비슷한 음식이다. 돼지를 고운 곰탕에 파, 감자, 옥수수를 넣어서 국물 맛이 진국이다. 마음씨 좋은 인디오는 더 달라는 말에 돈도 더 받지 않고 두 세 그릇은 그냥 퍼준다.

 안데스 산맥을 배경으로 하는 오타발로의 동물 시장은 그 위치만으로도 참 멋있는 곳이다. 게다가 남미 최대의 인디오 재래시장이다 보니 정말 사람들이 사는 모습 그대로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에콰도르에서의 첫 인상은 비록 좋지 않았지만 삶에 충실한 에콰도르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이 에콰도르의 참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