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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底蛙(정저와)
井底蛙(정저와)
  • 송종복
  • 승인 2013.12.18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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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정 - 우물, 底:저 - 바닥, 蛙:와 - 개구리
▲ 송 종 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경남향토사 수석부회장
물 안의 개구리라는 뜻으로, 식견이 좁아 세상물정을 모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우물 안의 개구리와 같다는 정중지와(井中之蛙) 또는 정와(井蛙),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본다는 정중관천(井中觀天), 우물 속에서 별을 본다는 정중시성(井中視星), 우물이 아닌 대롱을 통해 하늘을 엿본다는 관중규천(管中窺天), 대롱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니 표범 무늬의 일부분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관중규표(管中窺豹), 세상일을 모르는 소인을 비유할 때 자주 쓰는 ‘술 단지 속의 날벌레’라는 옹리혜계(甕裏醯鷄), 제비나 참새 무리가 어찌 천지의 광대함을 알겠는가라는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가 있다. 이 외에도 좌정관천(坐井觀天), 척택지예(尺澤之?), 촉견폐일(蜀犬吠日) 등 유사어가 많이 있다.

 송(宋)나라 몽(蒙: 河南省 商丘縣)의 출신인 장자(莊子: BC.369-286)의〈추수편(秋水篇)〉에 의하면 황하강의 신(神) 하백(河伯)이 물의 흐름을 따라 처음으로 바다에 나왔다. 그는 북해에까지 가서 동해를 바라보며, 바다의 끝이 없음에 놀라 탄식했다. 그러자 북해의 신(神) 약(若)이 우물 안에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해도 알지 못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름 한 철 사는 매미가 어찌 겨울의 눈[雪]을 알 수 있을까. 그들은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것은 작은 연못 안에 사는 송사리와 같이 소견이 좁은 경우를 말한다.

 ‘후한서’ 마원전에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바다에 살고 있는 큰 거북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행복하다. 우물 난간에 뛰어다니거나 물속에서 헤엄치다가 싫증나면 앉아 쉬기도 한다. 자네도 들어와 살아 보지 않겠나.’ 이 말을 들은 거북은 우물 안에 가보니, 발에 흙이 묻고, 물도 썩어 냄새가 고약했다. 기분이 나빠 말하기를 ‘바다는 황하의 큰 홍수나, 큰 가뭄 때도 물은 불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 그런 곳이 바다란다.’ 이 말을 들은 개구리는 정신이 아찔하며 자신의 처지와 세상에 대한 무지함을 안다.

 따라서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 도(道)를 말해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배움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처지를 파악하고 도에 따라야 한다. 즉, 세상이 넓고 학문이 깊음을 알아야 되며, 얄팍한 세상에 저주받을 ‘우물 안 개구리 행세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세상 사람에게 한마디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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