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7:31 (금)
체 게바라 흔적 물든 ‘보석 섬’
체 게바라 흔적 물든 ‘보석 섬’
  • 도용복
  • 승인 2013.12.19 2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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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쿠바
▲ 묘지를 장식한 예술품 못지않은 조각상 때문에 커다란 공원에 온 듯한 공동묘지 세크멘터리 꼴롱.
사회주의 무색한 자유로움… 조각 가득 공동묘지, 공원 같아

 올해 초 콜롬비아 아마존을 갔을 때였다.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국경마을 레티시아에서 원주민 가이드를 따라 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꼬박 하루가 걸려 아마존 오지마을 베르완노에 도착했다. 짙은 밀림에 둘러싸여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만큼이나 사람들도 좋은 인디오 마을. 낡은 판자집의 벽면에 붙어 있는 한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체 게바라.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문명을 접하기도 어려운 이곳에도 중남미의 혁명영웅 체 게바라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나라, 낭만적인 음악이 있고 정열적인 춤이 있는 나라, 세계 몇 안 되는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국민들이 행복한 나라, 바로 중남미의 보석 쿠바이다. 쿠바 섬은 ‘서인도제도의 진주’라고 불릴 만큼 널리 알려진 동경의 섬이다. 이 나라가 공산화되기 이전인 1940년대만 해도 미국과 서구 상류사회에서 최고로 치는 휴양지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내리쬐는 햇살에 숨이 턱 막힌다. 찜질방에 들어온 듯 열기가 이글대지만 그늘로 들어오면 금세 땀이 마른다. 더운 열기 때문인지, 삶에 찌든 탓인지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이지만 눈망울만은 더할 나위 없이 맑다.

▲ 말라콘 방파제를 따라 달리는 해안도로.
 시내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바라본 쿠바섬은 사회주의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유로움이 넘친다. 말레콘 방파제를 따라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젊은 여성들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짓을 한다. 정류장도 아니고 택시가 다니는 것도 아니다.

 “저 분들은 왜 저기 서 있는 겁니까?” “차를 태워달라는 겁니다.”

 쿠바 여성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기도 하는데, 여성들을 태워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어서 자연스러운 일이란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모르는 사람은 차를 탄다는 것이 두려운 일인데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이런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란다.

▲ 시내 가판에도 체 게바라와 관련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쿠바 여행은 수도 아바나에서 시작한다. 아바나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멋이 가득한 쿠바의 택시들이 번쩍인다. 아바나의 첫 번째 관광명소는 센트로 아바나에 있는 건물 까삐똘리오다. 아바나의 랜드마크인 이 까삐똘리오는 쿠바 혁명 이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쿠바 국립과학원으로 사용 중이다. 인기명소답게 까삐똘리오 앞은 여행객들을 위한 다양한 탈 것들이 대기하고 있다.

 시보네족, 타이노 족 등 5만여 명 주민들이 고도의 농경생활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던 쿠바 섬은 16세기 초에 에스파냐에 정복된 이후 근 4세기 동안 그 지배를 받아오다 19세기 말에 에스파냐와 미국의 전쟁이 발발해 다시 미국 손에 넘어가게 됐다. 미국의 조종을 받는 정권이 들어서며 부패와 수탈을 자행하다 바티스타 독재정권 때 이에 항거하는 게릴라들이 일어서서 정부를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그 지도자가 라틴 아메리카의 신화적인 영웅 체 게바라였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반란에 성공한 후 정권을 카스트로에게 맡긴 후 다시 게릴라 활동을 지도하기 위해 중미의 다른 나라 밀림 속으로 떠났다. 피폐한 민중들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혁명을 택한 체 게바라는 세상을 떠난 지 40여 년이 넘었음에도 쿠바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남아 있다.

 쿠바의 명소로 알려져 있는 세멘테리오 꼴롱 묘지로 향했다. 세계 4대 공동묘지의 하나인 세멘테리오 꼴롱 묘지는 20만 평이 넘는 넓이에 200만 개가 넘는 묘가 들어서 있어 차를 타고도 한참을 달려야 다 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 외무부 건물에 있는 인물은 혁명동지인 까밀로 씨엔푸에고스.
 이 묘지는 공동묘지의 크기 때문에 4대 공동묘지의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정말 아름답고 입이 벌어질 정도로 광활한, 한마디로 너무 화려하기 때문이다. 쿠바 정부는 이 꼴롱 묘지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묘지를 장식한 예술품 못지않은 조각상들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공동묘지가 아닌, 거대한 조각공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와는 장례문화도 다르고 묘지에 모습도 다르기에 공동묘지라기보다는 커다란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남녀 젊은 부부가 꽃다발을 들고 가기에 물어보니 남편 아버지의 기일이란다.

 쿠바에서는 가족묘를 쓰기에 가족들의 무덤을 같이 만든다. 한 개의 무덤에 대여섯 명의 유골함이 있는 것이다. 부부를 따라 무덤에 도착하니 이미 남자의 삼촌이 와서 무덤을 손보고 있었다. 대부분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무덤은 자연적으로 부스러지기도 하는데 이 아들은 달마다 와서 무덤을 보고 간다고 한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사랑일 것이다.

 여행자들에겐 멋진 볼거리지만 가족들에겐 아련한 슬픔의 장소이다. 꼴롱 묘지의 조각들은 화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조각마다 다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 소방관이 오기 전 불을 끄다 죽은 31명의 용감한 주민들이 조각된 것도 있고, 가슴 아픈 모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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