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5:14 (금)
정치계절 맞은 철새와 텃새
정치계절 맞은 철새와 텃새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4.02.09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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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설한풍(雪寒風)이 몰아쳐도 봄꽃은 움트기 마련이다. 더구나 입춘(立春) 절기를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 ‘봄의 전령사’ 매화(梅花)가 피었다는 남녘 소식이고 보니, 혹한을 견디고 봄을 다시 맞을 수 있다는 삶의 여정이 고마울 뿐이다. 입춘은 만물이 왕성하게 움직이는 24절기의 시작이다.

 춘풍과 함께… 그렇다고 바람이란 게 미풍, 훈풍만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거친 비바람도, 살을 헤집기도 하는 삭풍의 파워도 한때일 뿐 절기와 함께 온 봄바람에 밀려난다.

 그 봄바람과 함께 하는 듯, 올해는 또 다른 바람인 정치의 ‘계절풍(지방선거)’이 본격적으로 불어오는 듯하다. 그 바람을 타고 철새들은 때를 만난 듯, 이곳저곳에서 날아들려고 한다. 특히 경남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수두룩하다. 낙동강, 남강, 섬진강변 등과 도내 곳곳에 산재한 저수지와 늪지대, 그리고 도래지는 그들의 낙원이어서 더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철새들의 지저귐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그 철새들이란 게 “박씨를 물고 온 제비”도 아닌 듯 여겨지는데 박을 켜면 곧 바로 경남에 도내 시ㆍ군에 대박을 안길 듯, 호기 있게 지저귄다. 하지만 그 자태가 미덥지 않다. 선거 때면 일상인 상투적인 지저귐의 수사를 접해봐서다. 그래도 6ㆍ4 지방선거 때까지는 그, 철새들의 향연(?)은 계속될 것이다.

 갓 끈 떨어진 철새란 지적이 들리는 듯 한데도 그렇다. 그래서 철새의 지저귐을 잘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고향발전을 위해서라는 지저귐도 진실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전국을 강타한 A1처럼 상처만 남기곤 날아가 버릴 게 철새이기 때문이다.

 또 도민들이 그를 선택해 주지 않으면 뻐꾸기 마냥, 둥지(집)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에 뱁새, 멧새, 굴뚝새, 종달새, 딱새, 박새 등 텃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 시쳇말로 위장전입 해 주인행세를 하는 격이다. 더구나 자신이 낳은 알을 보호하기 위해 둥지 안에 있는 다른 새알 몇 개를 먹어 없앤다. 전체 알의 수를 같도록 해 위탁모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갓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다른 새알과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린다. 물론 어미 뻐꾸기는 둥지 근처에서 ‘뻐꾹뻐꾹’ 지저귄다. 마치 위장전입을 숨기려는 듯 온종일 큰 소리로 지저귄다. “너와 나의 고향”임을 고함치듯 지저귄다. 그렇다고 철새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또 텃새라고 다 옳은 것도 아니다. 거짓과 진실이 뒤 바뀐 경우가 허다한 때문이다. 아무튼, “철없는 철새 정치인들’이란 글이 불현 듯 생각난다.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을 노래, 화제가 되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작가 최영미의 “한국의 정치인”을 테마로 이우걸 한국시조시인 이사장이 허풍과 비현실적인 공약 남발 등을 지적한 글이다. ‘대학은 그들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혼자 하는 일이 뭐지?) 물론, 시 속의 가상(假想)현실일 뿐이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실제의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물론, 깨어 있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런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안타깝게도 눈에 뜨이는 성과가 별로 없다. 또 이 풍경이 한 단면일 뿐이라고 목청 높이는 정치인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이 없다.

 학식도 인품도 의심스러운 이들 정치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또는 교수자리를 예사로 주는 지역 대학들을, 또 무소불위의 파워로 제왕적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뒤 사법 처리되는 경우를 우리는 허다하게 보아왔기 때문일 게다. 지금, 텃새들은 텃새들대로, 철새들은 철새들대로 조심조심 끼어들기를 시도, 태풍이 예고되고 있다. 텃새라고 무조건 믿을 수도 없고 철새라고 굳이 내칠 필요도 없다. 경험을 쌓은 눈 밝은 철새라면 근시안적이고 비전 없는 텃새들보다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선거 때면 찾아오는 철새들은 경계하고 의심해야 한다.

 특히 성찰(省察)도 않고 권력의 맛을 보려고 뛰어드는 새라면 ‘철없는 새’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또 DNA가 다른 철새와 텃새도 연대라면 마찬가지다. 경남도민들은 벌써부터 그런 새들을 가려내기 위해 눈과 귀를 열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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