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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모임에서 배운 지혜
오랜 모임에서 배운 지혜
  • 정창훈
  • 승인 2014.02.20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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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김해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행정학 박사
 한 시대를 같은 활동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어떤 목적의 유무를 떠나 우리라는 이름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자리를 함께하는 모임이 셀 수 없이 많은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필자도 여러 형태의 모임과 단체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모임이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5년 전에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모임 이름을 창오회라고 하였다. 고향이 창원이 아닌 타지에서 와서 창원을 제2의 고향이라 생각하고 이곳에서 함께 오래 살자는 의미를 두고 모임을 시작하였던 기억이 난다. 애매한 모임이었지만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고 만나면 회원들의 소식과 한 달 동안 있었던 애기를 서로 나누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적당한 음주와 맛있는 저녁을 함께 하면서 즐겼고 일 년에 한두 번은 부부동반으로 야유회도 가는 멋진 행사도 하였다.

 얼마 전 창오회 회원인 모 변호사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 모임에 못 나간지도 아마 5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잘 지내느냐고” 가슴을 찡하게 하는 고향의 목소리였다. 안부 전화 한 통화에 마음이 위로가 되고 뜀박질하듯 바쁜 일상에 심장을 잠시 쉬게 하는 기분 좋은 전화를 받은 것이다. 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구나.

 창오회 소식을 듣고서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한의원 원장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한없이 반가워했다. 무조건 다음 모임에 참석해서 그리운 얼굴들을 보고 싶었다.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 준 친구들이었다.

 약속날짜가 다가오면서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기분으로 마음이 설레였다.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다가 직접 쓴 시집 두 권의 첫 페이지에 ‘마음을 다하여’라고 적었다. 모임장소였던 횟집도 친구인 횟집 사장부부도 여전했다. 서로 간에 건넨 첫마디가 “하나도 안 변했다. 더 젊어졌다” 였다. 어찌 늙지 않았으리 그래도 서로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가장 멋진 인사말인 것 같다.

 모임을 했던 날, 정월 대보름달은 보지 못했지만 달집태우기 행사 등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 법사 동장이 합류하자 보고 싶었던 얼굴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누군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였다. 함께 출발하였다가 각자의 능력에 맞는 사람들끼리 군집하여 달리다가 그 대열에서도 일부는 앞서 달리고 또 다른 일부는 뒤쳐지지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결승점에 도착하고 나면 우리 모두는 완주한 사람으로 기록될 것이다.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나서 같은 공간에서 인생의 마라톤의 레이스를 함께 하면서 만난 소중한 친구들이다.

 창오회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그들은 열심히 달리면서 친구끼리 경쟁이 아닌 서로를 이끌어 주고 밀어주고 기다려주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친구라는 확신과 믿음을 가졌다.

 우리는 우리나라, 우리 동네, 우리 친구, 우리 집이라고 하지, 내 나라, 내 동네, 내 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마누라, 우리 남편이라고 할 정도다. 더하여 우리친구도 생겼다.

 우리 모두는 부와 명예와 지위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무리 성공한 사람이 TV에 나와도 그가 사람답지 않으면 외면해 버린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하면서’ 창오회의 회원들은 먼저 사람이 된 사람들이다.

 송기원이 지은 “고전에서 명상을 만나다”에서 저자는 사람이 되는 길을 설명하면서 단군신화를 인용하고 있다. 곰은 우직하고 호랑이는 날렵하다. 곰과 호랑이의 성패가 갈린 것은 우직한 쪽이 날렵한 쪽보다 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한국인은 똑똑하고 날렵한 사람보다 좀 모자란 듯해도 우직한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그 시절 호랑이에게 금단증상이 나타났다면 참을 수 없는 니코틴의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매너 있는 호랑이가 동굴 안에서 흡연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금연 동굴을 잠시 벗어나 딱 한 대만 피고 돌아오려 했던 것이 그만 햇빛을 보는 바람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창오회에서 잠시 외출한 내가 갑자기 호랑이가 된 느낌이다. 호랑이라고 하더라도 그동안 금연도 하고 날렵한 호랑이보다도 더 빠른 세상에 적응하려고 최선을 다한 점을 어여삐 여겨 다시 도반으로 받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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