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22 (금)
술이 이끄는 불행한 삶
술이 이끄는 불행한 삶
  • 김병기
  • 승인 2014.02.26 0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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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인연도 시절따라 움직인다더니만 들어오고 나감이 있는 이곳 유치장도 사람이 사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얼마 전 형사들의 부축을 받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살인미수범 A(43)씨가 들어왔다. 한쪽 다리는 부러져 깁스를 하고 가슴에 압박붕대를 두르고 혼자 몸으로는 도저히 움직이지 못하고 유치실에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고 눕더니만 3일이 되는 날 말문이 트였는지 제법 사람 행세를 했다.

 A씨는 김해 자동차정비업체에 제법 알려진 인물로 사귀었던 애인과의 충돌로 교도소에서 살고 나온 것에 앙심을 품고 다시 애인 집에 몰래 들어가 야구방망이로 애인의 엄마를 내리치다 이를 만류하는 애인까지도 무참히 구타한 후 분성산으로 도주했다. 죄책감에 시달리다 급기야 타고 간 승용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감행하다 신나에 옮겨붙은 불에 놀라 팬티차림으로 비탈진 언덕을 뛰어 도망치다 다리뼈가 부러졌지만 치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않고 산속에서 3일을 헤매다 등산객에게 발견돼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준강간미수범 B(42)씨는 외모가 준수한 옆집 아저씨 풍채로 언제 자리를 잡았는지 시야 확보된 먼저 들어간 유치인의 자리에 앉아 텔레비전 채널을 변경해 달라 소리를 크게 해달라 요구사항이 참 많다. 보통은 먼저 들어와 있는 유치인이 있으면 서먹할 법도 한데 친화력이 좋은 것인지 빠르게 환경에 적응해 무슨 일로 왔는지를 물으며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것으로 보아 요주의 관찰대상이다.

 B씨는 술을 좋아하나 보다. 술 때문에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어불성설. 술 핑계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는 것 같아 보기에 딱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을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함께 술을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뭐하려고 집까지 가서 술을 먹다 남편이 잠들자 먼저 잠이 든 부인을 추행하다 들어왔는데 생각나지 않는 일로 그런 일이 없었다 한다. 같이 술을 먹고 취해 잔 것은 맞지만 평소 자기 인격으로 보아 나쁜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나 피해자 몸 상처와 B씨 옷에 묻은 혈흔 등으로 결국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기력을 회복한 A씨는 왜 야구방망이를 들고 휘둘렀는지 자기는 사람이 아니다, 사형판결을 받아도 할 말이 없고 남은 생을 회개하고 살겠다면서 진심으로 반성했으나, B씨는 술에 취해 모든 일을 기억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자로부터 죄를 뒤집어쓴 것 같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A씨 또한 술을 먹고 범행을 저질렀지만 잘못을 알고 있는데 B씨는 아예 기억 너머의 일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술의 역사는 8천여 년 전 황하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술은 관습용으로 허용된 마약으로 적당히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나 과음하면 패가망신한다. 술 때문에 자기 인생을 망침을 잘 알면서도 끊지 못함을 전생의 습성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오늘 저녁 빈 술잔은 깨끗한 물로 잔을 채워 들어봄은 어떠한지. 목숨 걸고 먹은 술로 인해 용서받지 못할 A씨와 B씨가 된다면 이 또한 불행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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