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식견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각료로 임명됐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받아서 적기만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대한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과 정책대안을 밝힘으로써 상호 소통하는 적극적이고 책임있는 업무자세가 필요하다. 되레 대통령이 장관들의 전문적인 정책과 의견을 메모하도록 하는 방향전환이 되도록 해야 한다.
취임 이후 박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말들이 많다. 국민과의 소통은 차치하더라도 국무회의나 관계기관장과의 회의에서 보여주는 대통령의 이러한 모습이 소통문제에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국무위원들이 대통령의 소통문제를 야기하는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먼저 이러한 회의 진행 방식을 개선하도록 앞장서야 할 것이다.
사실 박 대통령은 안쓰러울 정도로 경제 살리기, 공기업 개혁과 규제혁신이 급한데 장관들은 너무 느긋하다. 혁신계획의 성패는 속도감과 실천에 달려 있다. 전ㆍ월세대책이 혼선을 빚고 DTI 개선 방안은 금융위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면 이것 외에도 종합부동산세와 분양가상한제 등 남은 부동산 규제 조항까지 제거해야 함에도 딴소리가 나온다. 국민은 부동산시장이 정상화돼야 체감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대통령주재 국무회의나 각종 기관장회의에서 장관들이 맷집을 키워야 함에도 배짱과 소신을 피력하지 못하는 습관이 정부여당에서 제안한 정책도 야당이 반대하면 정책을 쉽게 포기한다. 국회의 현실적인 벽을 뚫는 것도 장관의 능력임을 왜 모르는가. 작년 부동산대책만 보더라도 국회에서 수개월째 계류하다가 법안이 늦게 통과돼 효과는 반감되고 말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 오죽하면 야당의원마저 장관이 찾아와서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는지 아쉬워한다. 장관들이 지레 겁을 먹고 야당의원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될 일도 안된다.
지난 20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 끝장토론’에 참여한 민간대표들로부터 애로사항을 들으면서 즉석에서 관계장관이나 대통령이 의견을 피력하는 7시간의 마라톤 회의가 있었다. 민ㆍ관 끝장토론은 일선 공무원의 타성을 깨고, 또 국민과 규제개혁의 당위성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벤트성, 혹은 대통령 의지에만 의존하는 규제개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정권이 바뀌면 또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토론에서 나온 규제혁신이 필요한 부분과 대안에 대해 국민과 기업 모두가 공감할 혁신적인 실천 로드맵을 제시하기 바란다.
최근에 박 대통령의 용어가 드세지는 것은 장관이나 공직자들의 보신주의, 소신 없는 정책 집행, 국회의 늦장 법안심의와 입법과정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 혼자 정책을 주도하고 지시하고 개입하다가는 실패한다. 규제의 걸림돌을 빨리 뽑아서 기업체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급하다. 모범생(?) 장관들이 부하 공무원한테 밀려 규제문제를 푸는데 늦장을 부리면 안된다. 최근에 전ㆍ월세 임대대책이 일주일 만에 바뀐 것도 바람직하지 못한 징후다. 규제혁신과 공기업 개혁은 경제팀이 중심을 잡고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며, 박 대통령은 성과로 평가해서 부처와 공무원에 대한 영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번 토론은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아니라 규제개혁 시작토론임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