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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네루-간디 가문, 최악 총선 성적 받나
인도 네루-간디 가문, 최악 총선 성적 받나
  • 연합뉴스
  • 승인 2014.03.25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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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부패사건ㆍ경제성장률 둔화로 민심 악화
 다음 달 7일 한달여 일정으로 시작되는 인도 총선을 앞두고 인도 현대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네루-간디 가문’이 최악의 총선 성적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5일 인도 언론에 따르면 이런 관측은 이 가문 출신인 소냐 간디와 라훌 간디가 각각 총재와 부총재를 맡은 국민회의당이 최근 10년의 집권 기간에 발생한 각종 부패사건, 경제성장률 둔화 등으로 민심이 악화한 데서 기인한다.

 민심은 최근 나온 각종 설문조사에 반영됐다. 일례로 현지방송이 여론조사 기관과 함께 실시해 지난 1월말 내놓은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회의당은 연방하원 543석 가운데 81석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인도국민당은 210석을 거머쥘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회의당은 1999년 총선 때 114석을 차지, 최악의 성적을 거둔 바 있다.

 1885년 영국 식민지배 시절 출범한 국민회의당은 모든 정파를 아우르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1947년 독립 이후에는 사실상 네루-간디 가문의 정당이 됐다.

 자와하를랄 네루 초대 총리를 비롯해 그의 딸 인디라 간디, 외손자 라지브 간디 등 이 가문에서 총리 3명이 배출됐기 때문이다. 소냐 간디와 라훌 간디는 각각 라지브의 부인, 아들이다.

 독립 직후 국민회의당 당권은 국민회의당 ‘조언자’ 역할을 한 마하트마 간디가 1948년 암살되고 당의 또 다른 지도자인 사르다르 파텔이 2년 뒤 사망함에 따라 네루에게 자연스레 넘어갔다.

 네루는 1951년 첫 총선에서 자당의 압승으로 초대 총리에 올랐다. 이어 국민회의당이 1957년, 1962년 총선에서도 잇따라 큰 승리를 거둠에 따라 계속 총리를 맡았다. 그는 인도 공화국의 초석을 놓은 데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외동딸인 인디라는 간디 성을 지닌 남성(페로자 간디)과 결혼, 인디라 간디라는 이름을 얻는다. 마하트마 간디와는 혈연적 관계가 전혀 없다.

 인디라 간디도 아버지에 이어 세차례 총리를 지냈다.

 인디라 간디가 1984년 시크교 신자들인 경호원 2명에게 암살되자 국민회의당은 그의 큰아들 라지브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같은해 총선을 치렀다. 비명에 목숨을 잃은 인디라 간디에 대한 ‘동정’ 덕분에 국민회의당은 당시 연방하원 514석 가운데 404석을 확보, 사상 최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라지브 간디도 1991년 총선 유세과정에서 암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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