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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파미르 고원 2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파미르 고원 2
  • 도용복
  • 승인 2014.05.06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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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 장엄함 저절로 숙연
▲ 해발 4천200m. 파미르 고원엔 밤사이 눈이 내려 길이 더욱 험해졌다.
레닌봉 정상 부근서 추위ㆍ고산증에 좌절

 이렇게나 긴 밤이 또 있을까.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된 고산증은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다. 머리를 긁어내는 두통과 계속되는 설사. 더 참기 어려운 것은 텐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찬 바닥의 한기였다. 가지고 간 옷가지와 침낭이며 두를 수 있는 것은 모두 몸에 감았지만 뼛속으로 스며드는 오한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 평생 칠십을 넘어 살면서 그토록 추운 밤은 처음이었다.

 잠을 쉬이 이룰 수 없자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파미르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구나. 전 세계를 돌아다녀도 이만큼 힘든 곳이 없었는데 자만했던 내 마음을 파미르가 벌하는구나. 이 상태로 며칠이 아니라 하룻밤도 참지 못하겠는데 파미르의 풍경을 구경하기 전에 저승 구경을 먼저 할 수도 있겠구나. 일행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날이 밝으면 나만이라도 도시로 내려가야겠다. 육체적 고통이 정신을 더욱더 나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도저히 추위를 털어내지 못해 아직 해가 뜨려면 이른 시간인데도 텐트 밖으로 나섰다. 웅크렸던 몸을 풀기 위해 크게 기지개를 켜는 순간, 파미르는 나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하늘의 모든 별이 내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까만 도화지에 점점이 반짝이는 흰 소금을 흩뿌린 듯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별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될까. 동이 틀 때까지 별들의 멜로디에 푹 빠져 버렸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리 일행을 인솔한 박 대장에게 하산의사를 타진했다. 나 외의 다른 일행 중에는 아직 고산증을 겪고 있는 사람은 없는 듯 주변의 풍경을 구경하며 정비를 하고 있었다. 고산증은 몸이 적응하면 이상이 없는지라 박 대장은 베이스캠프에서 1㎞ 정도 떨어진 해발 3천700m 정도 되는 곳에 유목민의 텐트를 임시로 빌리기로 했다. 일행 중 나이가 많은 편인 나와 두 명의 교수님 그리고 가장 나이가 적은 이 부장이 유르트에서 지내기로 하고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했다. 고도가 조금만 낮아졌을 뿐인데도 숨 쉬는 것이나 두통이 상당히 가시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몸 상태가 현저히 좋아졌다. 반대로 팔팔하던 이 부장과 최 교수님이 고산증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고산증은 나이나 체력과 무관하다더니 내가 좋아진 반면 다른 일행이 한 템포 늦게 고산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원래는 오늘부터 3~4일 정도 고산 적응 훈련을 하며 근방을 트래킹할 예정이었으나 지금 일행들의 컨디션으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다. 고산증으로 쓰러졌던 일행은 거의 하루 밤낮을 꼬박 누워있고서야 제 컨디션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가 머무는 유르트는 유목민들이 소와 양 떼를 풀어놓고 키우는 넓은 목초지대로 레닌봉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따라 듬성듬성 유르트가 설치돼 있었다. 7ㆍ8월 푸른 목초를 찾아 이 높은 고지까지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은 소젖을 짜고, 레닌봉을 오르는 산악인들의 짐을 실어 주는 포터를 하면서 추운 여름을 나고 있었다. 유르트 뒤의 야트막한 능선엔 1990년 눈사태로 죽은 40명의 산악인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었다. 레닌봉을 목표로 등반을 시작하는 많은 산악인들이 묘비 앞에서 고인을 위로하고 일행의 안전을 비는 묵념을 하고 지나갔다.

▲ 능선을 서너 개 넘어가니 절경이 이어진다.
 4일간의 고산 적응을 마치고 캠프 1로 출발하는 아침이 됐다. 비록 레닌봉 정상을 밟는 산행은 아니지만 4천200m의 고지까지 8시간의 산행이 이어지는 코스이기에 모두들 마음다짐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나를 비롯한 60대 이상인 3명의 각오는 더했다. 1박을 하기 위해 필요한 텐트와 식량은 포터에게 맞기고 비교적 편한 발걸음으로 시작했다. 1시간가량 이어지는 넓은 초원길은 어릴 적 뒷동산 소풍을 가는 어린 아이 마냥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평지가 끝나자 가파른 능선이 이어졌다. 한국의 산처럼 수목이 우거진 상쾌한 오솔길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눈으로 덮였다 녹기를 반복한 산세는 풀 한 포기 찾을 수가 없고 자갈과 진흙으로 자칫 잘못 발을 디디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실수로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45도 이상 되는 경사도를 타고 산밑까지 굴러떨어질 판이니 온갖 신경이 곤두섰다. 길이란 것도 없이 높은 경사도를 바로 타고 가기 어려우니 갈지자(之) 모양으로 말이 먼저 오른 길이 유일하다. 가파른 경사도에다 고산이라 산소가 부족하니 호흡이 금방 턱밑까지 차오른다.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며 능선을 서너 개 넘어가니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진다. 지나온 쪽으로는 푸름과 갈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천연의 모습이요, 앞으로 갈 길은 눈에 덮인 백색의 설경이다. 협곡 사이에 눈이 쌓이고 쌓여 얼음처럼 굳고 그 층이 또 갈라져 만들어진 얼음 협곡, 크레바스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크레바스를 가로 질러가는 길이 캠프 1으로 가는 빠른 길이긴 하지만 워낙 사고가 많이 나는 탓에 몇 년 전부터는 능선을 타고 가는 길만 허락하고 크레바스로 가는 길은 폐쇄됐다. 얼음나라로 들어선 탓인지 고도는 몇백m 차이도 나지 않는데 눈보라가 치기 시작하고 공기도 많이 차가워졌다.

 산머리로 해가 넘어가면 어두워지는 탓에 서둘러 캠프 1로 이동했다. 능선을 몇 개나 넘었을까. 레닌봉을 밟기 위해 캠프를 차린 등반가들의 텐트 무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하루를 머물 캠프 1에 도착을 했다. 레닌봉 정상이 바로 보이는 자리, 몇 개의 능선으로 둘러싸인 움푹 파인 분지가 우리가 머물 캠프다. 4천200m 고지. 고작 400m를 위로 올라왔을 뿐인데 또다시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태 증상을 겪지 않은 일행들도 고산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등반이 고되기도 하고 증상이 심해지기도 해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동이 트는 것이 느껴져 텐트 밖으로 나오니 간밤에 눈이 내려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우리가 잤던 텐트도 눈으로 덮여 형체만 겨우 알아볼 정도다. 캠프 1이 이 정도인데 레닌봉을 오르는 캠프 2, 캠프 3은 어느 정도일지 가보지 않아도 짐작이 됐다. 간밤에 폭설이 내려 우리가 머문 캠프로 눈사태가 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자연은 자연 스스로 위대하고 절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하산을 하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며 레닌봉을 올려다보며 작별 인사를 했다. 비록 오르지는 못했지만 그 장엄함을 가슴에 담으며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든 레닌봉. 너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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