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8:22 (금)
유병언은 어디로 갔을까
유병언은 어디로 갔을까
  • 조성돈
  • 승인 2014.06.03 2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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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자로 알려진 유병언이 도피중이다. 검찰 수사관 수십 명이 금수원에 대해 수색을 벌였고, 다음 날,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순천으로 향했다. 검찰은 순천 모 휴게소에 대해 수색을 벌였지만 유병언이 사라진 후였다. 유병언 신고보상금이 5억 원으로 상향됐다. 간첩신고 보상금이 3천만 원 정도이니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검찰은 구원파의 조직적인 ‘유병언 빼돌리기’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고 말했다. 유병언의 도피를 지휘하던 인물들이 다수 체포됐고, 조력자 검거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병언 추격 소식을 지켜보면서, 세월호 침몰 사건은 본질이 사라지고, 마치 첩보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검ㆍ경찰의 범인 추적상황에 대중은 흥미까지 느끼고 있는 듯하다.

 참사 직후, 우리는 승객들을 팽개친 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을 향해 비난이 폭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난의 대상은 바뀌어, 안일한 초기대응의 해경이 도마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해경해체라는 극단적인 사태를 목도했다. 다시 시간이 흐르자, 주체할 수 없는 대중의 분노는, 승객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만에 눈이 먼 악덕 사업주, 유병언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 사건의 본질은 잊혀져 간다.

 우리는 이쯤에서 차분하게 사건의 본질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사고의 재발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이 과연 선장이나 선원 혹은 해경, 아니면 유병언 일가일까?

 모 방송 대담프로에서 나는 한 인사의 날카로운 지적에 공감했다. 그는 급속한 경제성장은 가능하지만 급속한 문화발전은 쉽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렇다. 세월호 사고의 근원은 우리 사회의 문화문제와 직결된다. 해경해체나 선원 혹은 유병언 일가에 대한 처벌이 문화의 성장과 얼마나 관련은 가질까? 생명의 소중함이나 인간의 자유가 제도, 혹은 사고대처 매뉴얼의 문제에 그치는 것일까? 나는 위 인사의 지적처럼 우리 사회의 문화적, 혹은 집단무의식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의 행형학은 처벌이 엄격할수록 범죄가 감소됨을 부정한다. 즉 형법의 정신은 복수에 입각한 응보론에서 교육과 예방효과를 지향하는 목적론으로 향한다. 칸트는 정의론에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고 사회는 범죄자를 등가로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회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소위 응보론이다. 그러나 저명한 형법학자이기도 했던 철학자 헤겔은 형벌의 실효성과 사회적 효율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응보가 반드시 등가일 필요가 없으며 가치 상당 수준이면 족하다고 보았다.

 형법 해석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법학자들의 다수 의견은 법 규정의 의미와 목적, 그리고 보호법익을 고려한 목적론적 해석방법론에 입각하고 있다. 즉 사고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관련자들을 법으로 처벌하는 일 못지않게, 범죄자를 교육하고, 나아가 인명을 중시하는 문화성장을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의식 깊숙한 곳에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나의 욕심을 우선시키려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유병언은 어디로 갔을까? 유병언 첩보드라마에서 피아의 실체는 없다. 유병언은 실체라기보다 현상이다. 작은 유병언들은 금수원이나 별장에 숨어있지 않다. 사고에 분노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내부 깊숙히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문화의 형태로 은밀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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