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51 (금)
사라진 토종 참깨
사라진 토종 참깨
  • 조성돈
  • 승인 2014.06.19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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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돈 전 언론인
 최근 참깨 고유의 항산화 성분 ‘리그난(Lignan)’이 주목을 받으면서 참기름의 영양학적 가치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참깨 기름은 향이 강하고 고소해, 한국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식용유이다. 기력을 더하고 심장질환과 혈관장애를 고치는 등 참깨는 의서에도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기록돼있다.

 참깨에 어떤 성분이 들어 있길래 건강에 좋은 걸까? 최근 뉴스에 참기름의 성분이 자세히 소개된 적이 있다. 올레인산ㆍ리놀레산ㆍ비타민E 등이 포함돼 있으며 그 외에도 지용성 ‘리그난’이라고 부르는 세사민ㆍ세사몰린ㆍ세사몰 등 중요한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필자가 추측하기에는 우리나라 참깨는 수십년 전 이 땅에서 사라졌다. 시장에 진열된 참기름은 물론, 국산 참깨를 볶아 만든 참기름에서도, 어릴 적 기억 속에 각인된 향기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이를 이상히 여긴 필자는, 오래전 국립종자보관소 등 종자관련 기관 여기저기에 ‘옛날 참깨 종자’를 구할 수 있는지 문의한 적이 있다.

 관계기관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필자의 질문 요지를 빨리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 만에야 겨우 필자의 의도를 알아차린 종자보관소의 한 담당자는 참깨의 경우, 벼 등 다른 작물들처럼 개량종을 보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시골마을에서 재배하고 있는 참깨의 경우, 순수 우리 토종 참깨가 맞을 것이라는 모호한 답을 듣게 됐다.

 현재의 국립종자원이 식물의 특성검정이나 품종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음에도, 순수토종 참깨가 존재하고 있는지 여부조차도 관심이 없는 듯해 실망했다. 참깨에 대한 공무원의 인식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종자 강국이라 거나,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유전자원센타 종자은행이 제2 세계종자센타라는 등 평가가 필자에게는 미심쩍다. 참깨는 자가수정으로 씨를 맺지만 포장(圃場)조건에 따라 일정 부분은 늘 자연교잡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순수토종은 외래종과 점진적으로 교잡될 수도 있다. 담당자는 그럴 수도 있음을 인정하면서, 어이없게도 강원도 산간마을들을 둘러본다면 혹시 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옛날에는 참기름 병마개를 뽑으면 이웃집에까지 참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이제는 옆 좌석의 동료도 내가 비빔밥에 섞고 있는 것이 참기름인지 들깨 기름인지 얼른 구분하지 못한다.

 비교적 향에 민감한 필자가 참기름의 고소한 향기를 마지막으로 맡은 것이 35년 전쯤의 일이다. 지금의 참기름은 향기가 매우 약하거나 거의 없다. 왜 그럴까? 필자는 그 이유가 순수토종 참깨가 사라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은 개량종 참깨 종자가 보급되고 있고, 그것이 자연교잡을 이어간다면 순수토종 복원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토종닭의 경우, 모 대학에서 10년이나 걸려서 복원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옛날 토종닭의 유전자가 보관돼 있다면 모를까, 현재의 토종닭이 정말 토종닭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혹시 종자 확보에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일본에는 우리나라 순수 토종 참깨 종자를 보관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일었지만, 확인해 보지는 못했다.

 종자개량은 주로 다수확을 목적으로 행해진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라진 유전적 다양성은 쉽게 복원되지 않는다. 우수한 식물 종자 확보는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된다. 병충해 방지나 다수확의 대가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귀중한 유전자들이 사라진다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토종 씨앗을 지킴으로서 초국적 농기업들로부터 불임 씨앗을 사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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