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5:41 (토)
望夫石(망부석)
望夫石(망부석)
  • 송종복
  • 승인 2014.09.10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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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望:망 - 바라다 夫:부 - 남편 石: 석 - 돌

 정조를 굳게 지키던 아내가 국가의 충성을 위해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 화석이 되었다는 전설적인 돌로서, 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바위를 지칭한다.

 정조를 굳게 지키던 아내가 국가의 충성을 위해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죽어 화석이 됐다는 전설적인 돌로서, 주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바위를 지칭한다.

 1978년 김태곤은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망부석’을 불렸다. ‘간밤에 울던제비 날이밝아 찾아보니, 처마끝엔 빈둥지만 구구만리 머나먼길, … 그리운내님 계신곳에, 푸른하늘 구름도, … 두리둥실 떠가라, 오매불망 내 님에게로.’ 이 가사를 보면 아내가 남편을 위한 일편단심은 날아가야 한다는 금수(禽獸)로, 바닷가에서 한없이 울었다는 번행초(蕃杏草)로, 애절한 절규로 먼 곳을 볼 수 있는 산위의 망부석(望夫石)으로 언급된다.

 이 ‘망부석’의 전설은 중국 ‘신이경(神異經)’의 ‘유명록(幽明錄)’에 멀리 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무창(武昌)의 산위에서 매일 바라보다가 선 채로 죽어 돌이 된 아내에 관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신라 눌지왕은 고구려가 화친한다는 이유로 왕제 보해(寶海: 삼국사기는 복호(卜好))를 보냈더니 돌려주지 않았다. 이를 본 박제상(삼국유사는 김제상)은 고구려에 가서 보해(寶海)를 구해냈다. 또한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 미해(美海: 삼국사기는 미사흔(未斯欣))를 구하러 왜왕에게 환심을 산 후 미해를 귀국시킨 후 박제상은 그곳에서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만다.

 왜왕이 미해를 빼돌린 죄책을 묻고 신하되기를 권유하자 나는 ‘신라의 臣下지 너의 臣下가 아니다’고 했다. 왜왕의 문초와 설득에 ‘차라리 신라의 개ㆍ돼지가 될지언정 너희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고 해 죽음을 당했다. 그의 아내는 두 딸을 데리고 망덕사 앞 모래탑(長沙)에서 기다리며 다리를 뻗고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이의 넋(魂)에서 자란 꽃을 번행초(蕃杏草)라 하며 이는 주로 바닷가 모래땅에서 원혼의 꽃을 피운다. 그는 치술령(?述嶺)에 올라가 멀리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 수릿재(경남ㆍ북경계)의 신모(神母)가 되고 그가 있던 바위는 ‘망부석(望夫石)’이 되고 그의 혼은 새가 됐다는 ‘치술령망부석전설’이 있다. 또한 부부의 만남은 살아서는 불가능하므로 새가 돼 훨훨 날아 바다를 건너가고 싶은 소원을 풀겠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망부석은 전북 정읍공원에 아내가 장사를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곳을 기념하는 ‘정읍사(井邑詞)’ 노래와 이야기가 있다. 그 외 중국에 사신으로 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바위서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전설(落花巖傳說)’도 있다.

 역사적인 사건을 한 여인이 정절을 통해 고통 속에 전해지고 이를 기리는 망부석은 한국인의 의식을 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같이 국가를 위한 충성과 남편을 위한 절개는 아무리 강조해도 더 한 것은 없을 것이다. 최근은 교육은 어떤가. 이런 충ㆍ절을 기리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견습시켜 옛 충절을 오늘의 산 교육장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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