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0:27 (금)
斷髮令(단발령)
斷髮令(단발령)
  • 송종복
  • 승인 2014.10.01 2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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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斷:단 - 끊을 髮:발 - 터럭 令:령 - 법령

 긴 머리카락을 삭발하게 한 것인데, 머리털은 부모로부터 물러 받은 것이니, 차라리 목을 끊으라고 항변했다. 이는 세계조류를 너무 몰랐던 한말의 단면이며, 지금으로 봐 선견지명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단발한 자는 윤치호이며, 여성으로는 강향란이다. 단발령은 1895년(개국 504년 음력 11월 15일)을 1896년(건양 1년) 1월 1일자로 양력을 채용하고, 또한 단발령을 내렸다. 1895년 12월 30일 고종은 칙령을 내려 전 국민에게 단발령(斷髮令)을 내렸다. 고종황제의 상투는 정병하(농상공부대신)가, 황태자(순종)의 장발은 유길준(내부대신)이 잘랐다. 이어 대신이하 관리들은 머리를 깎은 후, 가위와 칼을 들고 다니며 강제로 백성들의 상투와 장발을 끊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생들은 ‘사람의 두발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니, 손상시키면 불효의 길이라 해 차라리 ‘목이 잘리더라도 머리는 내놓을 수 없다’고 맞섰다. 이 때문에 산골로 숨거나, 상투를 잘린 사람들은 상투를 들고 통곡하라면서 도성을 떠났다.

 최초로 단발한 자는 중국 상해에서 공부하는 윤치호이다. 그는 서양인과 자유롭게 상종하기 위해 그 불편한 상투를 잘라 버리고 도포 두루마기 대신 양복을 입었다.

 또한 갑신정변 이후 국외로 망명해 쫓겨 다니던 국사범들은 일본, 중국, 미국 등지로 갓 쓰고 상투 꽂고 다니기란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니었다. 남의 시선을 끄는 꾸밈새를 하고 다닐 처지도 못 되어, 그들은 상투를 싹둑 잘라버리고 양복을 입었다. 이 후 1901년부터 서울, 수원 등에 이발소와 이용원이 설치됐다.

 종래는 도포를 입고 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지팡이를 짓고 다니는 양반들이 어느 듯 양복에다 ‘하이칼라’를 하고 다니니 세간에서는 미친놈이라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사실은 단발을 하고보니 위생상, 관리상, 머리 감을 때의 간단함은 수긍했다. 여성으로는 1921년 강향란이 단발을 했고 1925년에는 허정숙, 주세죽, 김조이 등은 ‘쇼트커트’를 했다. 이들은 종래의 구속을 타파하고, 부자연한 인습을 개혁하고, 남편이 술 먹고 주정하며 머리채 끌며 때릴까 해서 잘라 버렸다고 한다.

 1970년대 초에는 남성은 장발이, 여성은 ‘미니스커트’가 등장하자 이는 미풍양속을 해치는 퇴폐대상으로 여겼다. 경찰은 ‘바리캉’, ‘가위’, ‘30㎝자’를 들고 다니며 강력 단속했다. 이에 불응할 경우 경범죄로 즉심에 넘겼다.

 최근 S여자대학 축제 홍보에 모 학과에서는 ‘핫팬츠’에 가슴골 노출이 지나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1세기 전의 단발령이나, 반세기 전의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이 이제는 한갓 ‘돈키호테’ 형이 되고 마는지, 요즘 길거리는 수영장인지 나체촌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 선정적이어서 길손이는 아예 민망해 눈을 외면하고 다녀야 할 정도가 됐으니 역사가 원망스럽고 한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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