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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억새 군무 영혼도 쉬어가는 절경
바람따라 억새 군무 영혼도 쉬어가는 절경
  • 장세권 기자
  • 승인 2014.10.17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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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지붕, 영남알프스
▲ 해질녘 바람따라 출렁이는 사자평 억새밭이 붉게 물들고 있다.
사자평 고원 가을엔 황금빛 천황재 억새 가장 아름다워
3시간 이상 산행 힘들 경우 케이블카 타고 전경 구경

 영남알프스는 영남의 지붕으로, 태고부터 수많은 사람을 비롯해 산 것들을 그 넓은 품에 안고 삶을 이어가도록 해왔다. 등산이 국민 스포츠가 된 근년에 이르러서는 수려하고 장엄한 산세로 산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 영남알프스의 산들은 대부분 밀양 땅에 속하거나 걸치고 있다. 재약산과 천황산, 가지산, 운문산, 구만산, 억산, 능동산, 백운산이 바로 그것들이다. 밀양을 가히 영남알프스의 종주로 일컬을만하다.

 영남알프스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재약산은 드넓은 사자평 고원을 머리에 이고 있다. 영남알프스 산군을 이루는 산들은 대부분 산줄기 곳곳에 넓은 평원을 갖고 있어 알프스의 고원지대를 닮아 있다. 비교적 날카로운 능선과 뾰족한 꼭대기로 이뤄진 일반적인 한국의 산들과는 지형이 좀 다른 것이다. 그게 영남알프스란 이름이 붙은 연유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서도 재약산의 사자평 고원은 4.1㎢(약 120만 평)에 이르는 광활한 평원이다. 워낙 넓어 백수(百獸)의 왕, 사자의 영토에 견줄만하다고 해서 사자평(獅子平)이다. 그 사자평 고원은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억새로 뒤덮이는 것이다. 그 억새는 햇빛을 받아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은빛 물결을 이루다 황금빛으로, 그리고 회색빛을 띠기도 한다.

 황금빛으로 물든 억새로 장관을 이루는 사자평원 고원의 억새가 특별한 것은 빛깔이 유난히 곱기 때문이다. 사자평 억새의 빛깔이 그렇게 고운 것은 고원을 지나 막힘없이 흘러가는 가을바람과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까닭이다. 초가을의 어리고 여린 억새에서부터 다 자란 늦가을의 키 크고 억센 억새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자평 고원을 간단없이 훑고 지나가는 바람에 일제히 군무를 춘다.

 그 군무의 억새밭을 시도 때도 없이 구름이 함께 뒹군다. 바람과 구름과 억새의 환상적인 공연이다. 재약산을 삼남금강이라고 일컫는 이유 중에 바람과 구름과 억새가 한몫했을 것 같다. 그 꿈결 같은 억새밭의 한 귀퉁이에 사람들이 살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등산객들에게 민박을 제공하고, 음식을 파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사리 마을로 불렸던 그곳에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조그만 학교가 있었다. 이름도 앙증맞은 산동초등학교 고사리 분교였다. 바람과 구름과 억새를 동무 삼아 고원을 헤집고 다녔던 고사리 분교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그들은 아마 지금도 꿈속에서 광활한 사자평 억새밭을 뛰어다니지 않을까. 구름 속에서, 또 바람 속에서….

▲ 사자평을 찾은 등산객들이 억새풀 사이에서 환한 미소를 띄우며 추억을 쌓고 있다.
 재약산에는 주저리주저리 전설이 열려 있다. 그중에 신라의 어느 왕자가 이 산의 샘물을 마시고 고질병이 낫자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영정사라 이름 지었고, ‘약이 실린 산’이라며 재약산이라고 불렀다는 얘기가 있다.

 추억으로만 남은 고사리 마을과 고사리 분교일제는 금수강산 조선의 아름다운 산 곳곳에 저희의 왕인 ‘천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한때 ‘우리 이름 되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그때 재약산과 천황산을 통합해 재약산이라고 부르기로 했으며, 천황산의 정상부였던 사자봉(1천189m)을 재약산의 정상으로 삼았다. 원래 재약산의 정상은 수미봉(1천18m)이었다. 재약산 수미봉에서 사자봉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천황재는 억새가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수미봉에서 사자봉, 능동산, 신불산을 잇는 산길에는 ‘하늘 억새길’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하늘 억새 길의 군데군데에는 사람의 보폭(步幅) 간격으로 나무토막이 깔려 억새밭과 숲을 보호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영남알프스 얼음골 케이블카가 개설돼 억새밭을 구경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얼음골 부근 승강장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직선거리 1.8㎞를 10여 분만에 올라 능선에 닿는다. 국내에서 가장 긴 거리의 케이블카라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니 건너편 백운산의 백호바위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푸른 산에 깔린 암릉이 마치 흰 호랑이가 걸어가는 모습이다.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인 녹산대는 해발 1천20m로 역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케이블카 승강장이다. 이곳에서는 영남알프스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남알프스 하늘정원’이라고 이름 지은 것이 그럴듯하다. 3시간 이상 걸리는 등산이 힘에 부치는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영남알프스 전경과 사자평 고원의 억새구경을 해도 좋을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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