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18:52 (목)
太陽曆(태양력)
太陽曆(태양력)
  • 송종복
  • 승인 2014.12.17 2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송종복
 太:태 - 클 陽:양 - 볕 曆:역 - 책력

 고종부터 중국연호를 버리고 자주적인 건양, 광무, 융희를 썼다. 일제는 대동, 소화, 평성을 지금도 쓰고 있다. 우리는 광복 후 단기를 쓰다가 서기로 쓰고 있다. 독자적 연호가 아쉽다.

 1895(고종32)년 11월 17일부터 양력을 사용했다. 그 이전은 음력을 사용했으나, 어느 왕 몇 년이라는 연대는 없었다. 중국의 연호를 버리고 자주적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때가 1895년 을미년이다. 이 년부터 양력을 사용하되 언제부터 기산일로 할 것이냐 하다가, 조선개국부터 하기로 했다. 1392년이 조선개국이니 1896년에서 빼면 504년이 된다. 그래서 음력개국 504년 11월 17일을 정하되, 이를 양력으로 환산해 개국 505년 1월 1일로 정했다.

 1895년 8월 20일(양력 10월 8일)에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을미개혁을 단행했다. 이 당시 조선은 음력을 사용했고, 일본은 양력을 사용했다. 일본 입장에서 달력이 불편했다. 따라서 11월 16일을 기해 음력사용을 없애고,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바꿔 사용했다. 따라서 공식문서에는 1895년 11월 18일의 날짜는 없다.

 조선시대는 중국 황제의 연호를 사용했다. 임진왜란은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왕조’와 ‘연호’가 없었다. 그 대신 중국 황제의 연호인 ‘만력 20년 왜란의 발생’이라고 했다. 또한 ‘선조’라는 말은 임금이 죽은 후 붙는 명칭이다. 지금은 임금이 다 죽었으니 당연히 세종 △△년, 영조 △△년 등을 쓰는 것이다.

 1896년을 ‘건양’, 1897년을 ‘광무’, 1907년을 ‘융희’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그런데 1910년 병탄 후의 일본은 ‘대정’으로, 1926년부터 ‘소화’로, 1989년부터 ‘평성’으로 쓰고 있다. 반면에 일제가 소화 45년에 패전하자, 우리는 단기(檀紀) 4278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민족 주체성을 찾은 ‘단기’를 27년간 사용하다가, 1962년 박정희 정권에서 서기(西紀)로 사용케 했다. 단기로 사용하던 ‘도민증’은 1967년부터 서기로 ‘주민등록증’으로 사용케 했다.

 우리는 고유연호인 ‘단기(檀紀)’가 있는데도 ‘서기(西紀)’만 사용하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우리의 국호는 ‘대한민국’이며 단군의 후손으로 말하고 있다. 서기는 예수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했으니, 역으로 생각하면 ‘대한민국은 예수의 후손이다’는 착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화폐나 서적에 ‘평성 △△년’이라는 연호를 쓰고 있다. 중국도 대만도 자기의 고유연호를 쓰고 있으며, 심지어는 북한도 ‘주체’라는 연호를 쓰고 있다. 차제에 국제적 공식문서에는 서기를 쓰되, 국내의 문서, 화폐, 신문 등에는 단기를 쓰는 것이 어떨까 하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