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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같은 사람과 말벗 삼아 시간 여행
통영 미륵산 ‘토영 이야길’
2014년 12월 24일 (수)
김봉조 7618700@kndaily.com
   
▲ 야소골을 배경으로 트레커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불교문화의 정신적인 요람 전망대서 경치 조망 눈 호강
용화사 출발 3시간 30분 소요 기대보다 큰 걷는 행복 만끽

 옛길을 걷다 보면 자신이 과거의 그림에 들어와 있는 듯 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 길 위에서 만 가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산이 있다면 누구나 한 번쯤 호기심을 갖고 찾고 싶을 것이다. 발걸음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구전들이 지혜롭게 다가오고, 세월에 묻힌 산길은 길동무가 돼 깨끗한 마음을 고스란히 남겨준다면 누구나 한 걸음 더 내딛고 싶을 것이다. 그곳은 ‘미륵불이 사바세계에 출현해 용화수 아래에서 삼회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불교문화의 요람이며 통영의 영산인 미륵산이다.

 이번 미륵산 ‘토영 이야길’ 트레일에 길 안내는 ‘통영 길 문화연대’ 차미옥 부대표가 함께했다. 미륵도로 이어지는 충무교를 지나 해저터널을 좌측에 두고 봉평 5거리에서 전혁림 미술관을 지나면 트랙의 시작인 용화사 광장 주차장에 도착한다. 잠시 미륵산 안내도를 살펴보고 세 갈래 길에서 용화사 방향으로 들머리를 잡아 걷다 보면 우측에 정비 중인 수원지를 지나고 수많은 연등이 하늘에 걸린 용화사에 닿는다. 불전 보광전을 비롯한 다양한 양식의 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 용화사 경내를 둘러보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산길을 찾아 나선다.

 ‘토영 이야길’은 용화사에서 출발해 미륵산, 미래사, 야소골 능선, 미륵치, 띠밭등을 거치면 11㎞ 거리다. 여유를 잡아도 3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차 부대표에게 ‘토영 이야길’이라 불리게 된 의미를 물었다. ‘토영’은 통영 사람들이 통영을 발음상 부르는 방언으로 ‘이~야’는 통영 사투리의 ‘세이야, 히야, 언니야’ 로 불리는 것으로 ‘통영의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들끼리 더 정답게 걷는 길’이라는 뜻에서 ‘토영 이야길’로 정해졌다 한다. 즉, 가까운 언니와 같이 걷는 길이라 풀이하면 쉽게 다가설 것이라 덧붙였다. 트랙은 용화사 계단을 내려서서 좌측 기와로 이어진 담장을 끼고 시작한다. 질서 있게 도열한 삼나무 숲이 멋스러운 옛길 위에 정겨움을 담아 반갑게 다가온다.

 아름드리 적송과 소사나무가 숲을 이룬 길 주위에는 줄기를 이은 마삭과 약용식물 맥문동이 지천이며, 식물도감에서 볼 수 있는 남도 땅 식물군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는 행운을 얻는다. 경사가 가볍게 다가오는 목책 계단 오솔길을 10분여 오르니 세월의 이끼를 입은 무명 부도탑이 누군가가 알고 있을 이야기를 간직한 채 잠시 지나는 이에게 발걸음을 멈추고 합장하게 한다. 당래선원(當來禪院)이라 쓴 편액이 올려다보이는 관음암에 들어서자 청정 대나무가 둘러싼 대웅전 앞에는 이국적인 야자수와 안쪽 보광루(普光樓) 편액 옆에 애기동백꽃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오는 길, 물이 마른 연못 속에 높이 선 12층 석탑은 깊은 화두를 안고 통영 앞바다를 지켜보고 섰다.

   
▲  자침만 이해하면 방향을 알기 쉽게 만들어 놓은 대리석 나침반.
 관음암을 나와 잘 다져진 포장길을 200m 걸으면 미륵치로 향하는 오름길과 도솔암 100m를 알리는 이정목을 만난다. 잠시 도솔선사와 호랑이의 전설이 있는 도솔암에 들러보자. 천지봉과 정토봉 바위 봉우리가 뒤를 받치고 있는 인적 없는 경내에는 개성 있게 생긴 견공이 스님을 대신해서 길손을 맞고, 암자 한쪽 뜰, 느티나무 옆에 서니 정면으로 아름다운 ‘동양의 나폴리’ 통영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 태조 때 창건된 도솔암은 통영의 근ㆍ현대사에서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인재 양성의 보고로 통영에서 관운을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솔암에서 공부해서 관직에 나갔다고 함께 한 이가 자랑한다.

 도솔암을 나와 미륵치 까지는 약 400m 올라야 한다. 토양이 씻겨 내리면서 패인 트랙에는 알몸을 드러낸 침목 계단이 앙상한 뼈대를 보여주다 이어 평탄한 길을 만난다. 이른 봄이면 바람난 처녀가 치맛자락을 흩날리듯 얼레지꽃이 지천으로 핀다니 연신 기대된다. 트랙은 미륵치에서 6개의 방사형 갈림길을 만난다.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면, 정면 미래사 방향, 야소골 방향 내림길, 정토봉을 지나 현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답사팀이 올라온 용화사 길, 띠밭등으로 가는 길, 마지막으로 미륵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분기점에서 답사팀은 미륵산 정상을 향해 이동한다.

 미륵치에서 800m를 올라야 정상이다. 경사를 안고 오르는 거친 너들 길이 가쁜 호흡에 자주 발걸음을 붙든다. 누가 만들어 놓았는지 평평한 돌을 올려놓아 잠시 쉬어가게 만든 쉼터는 잠시나마 미륵산을 기억하는 작은 즐거움이다. 119구급함이 있는 바위아래 전망대에 서면 ‘해양 스포츠 파크’ 건설이 한창인 야소골이 넓은 분지를 형성하며 자리하고 있다. 1억 6천만 년 전 백악기 공룡시대 말기의 화산 분화구터로 물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해서 농사가 잘 되는 이곳은 봄이면 진달래가 융단을 깔아놓은 듯 붉은 화원으로 물들고, 모내기 할 때쯤이면 다랑논 논배미 마다 반사되는 물빛이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한다.

 철계단을 오르면, 이내 나무 계단이 정상을 지척에 두고 마지막 오름을 당긴다. 이번 트레일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바위 난간 지대를 지난다. 거대한 바위 암반이었던 미륵산 정상은 전망대 데크가 설치돼 사통팔달 안전하게 조망을 즐길 수 있게 조성해 놨다. 정상에서 둘러보는 통영의 아름다움은 파노라마처럼 회전하며 아낌없이 눈을 호강스럽게 한다. 정상 봉수대 터에는 대형 나침반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자침만 이해하면 누구나 쉽게 원거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 놓은 통영시의 세심한 노력과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 미륵불 전망대에 서면 종현산 해-바라기길 풍경이 멋지게 펼쳐진다.
 정상에서 병풍을 펼치듯 행복한 마음으로 통영의 아름다움을 감상해 본다. 거제대교에서 시작된 조망을 낮추니 남망산 조각공원이 위치하고, 서호만에 편안하게 자리 잡은 통영항이 화려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통영항 뱃길을 가르는 해협사이에는 4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산도가 충무공의 애국 유흔을 전해주며 제승당과 거북등대를 품고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으로 두 개의 섬이 백사장으로 연결된 비진도가 쌍돛을 올리고 항해하고 있고, 그 뒤로 죽도, 장사도, 대ㆍ소덕도가 매물도를 희미하게 비춰준다. 남쪽으로는 학림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가 수반 위에 연꽃을 피운 듯 고운 자태를 띄우고 있다.

 정상에서 봉수대 쉼터 방향으로 하산길이다. 인동과에 속하는 통영병꽃 자생지가 있는 데크를 내려서면 정지용 시비가 있는 신선대 전망대에 선다. 1년 후 자신이 쓴 편지를 받아 볼 수 있는 느린 우체통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미래사를 900여m 두고 아래로 향하는 트랙은 부드러우면서 빠르게 이어진다. 편백 숲에 접어들면 미래사에 닿는다. 단아한 가람이 인상적인 미래사를 둘러보고, 편백 숲길이 아름다운 미륵불 오솔길을 걸어보길 권한다. 미래사 주차장에서 200여m 남쪽에 위치한 미륵불 전망대에 서면 통영 바다 백리길, 종현산 해-바라기길 해상 풍경이 기대 이상으로 다가온다.

 미륵불 전망대를 나와 미래사를 우측에 끼고 진행하다, 편백나무 아래 쉼터에서 미륵도 달아길 1구간을 알려주는 솟을대문을 지나, 좌측에 만월 요양병원을 두고 완만한 경사를 오른다. 나주 정씨 묘 갈림길(경남소방 2-6)에서 좌측길로 진행하면 약수터 입구(경남소방 2-7) 분기점을 만난다. 이 지점에서 50m 내려서면 물총새바위 샘터가 자리한다. 근처 야생차밭에서 찻물로 사용하던 샘터로 물맛이 맑고 상쾌하다. 맛있는 물맛을 보았다면 다시 50m를 올라와 정상방향 30여m를 가다, 직진길을 버리고 좌측 야소골 능선 오솔길로 진행한다. 100여m 진행하면 처진 개복숭아 나무를 지나고, 느리게 감아 돌면 오름길에서 만났던 미륵치에 다다른다.

 미륵치는 옛날 야소골 사람들이 나뭇짐을 해서 통영장으로 넘든 고개로, 한때 일부 부도덕한 산주와 일본인에게 나뭇단을 빼앗기는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많아 ‘눈물의 고개’로 불렸다. 답사팀은 미륵치에서 넓은 잔디밭이 있는 우측 띠밭등으로 향한다. 생강나무 군락지가 있는 길 위에서 아름다운 통영 강구안을 바라보며 잠시 옛 이야기꽃을 피운다. 미륵치에서 15분 진행하면 체육 시설이 있는 띠밭등 샘터를 지나고 용화사와 미래사를 이어주는 임도에 접어든다. 용화사 아래 좌측 수원지 상단의 데크를 가로질러 운치 있는 저수지를 지나 우측으로 내려서면 트랙의 끝점인 용화사 광장 주차장이다.

 이번 ‘토영 이야길’ 트레일은 기대 이상의 대어를 낚은 느낌이다. 트랙이 겹치는 지점이 많아 독자들에게 포인트를 설명하기가 다소 난해했지만, 비교적 잘 설치된 이정표가 이동 지점을 체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다만, 지면 구성상 더 많은 이야기와 통영의 아름다움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토영 이야길과 더불어 천혜의 자연경관이 산재한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섬을 연계해서 추진 중인 ‘한려해상 통영 바다 백리길’ 트레일에도 높은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길 바라며, 많은 분들과 함께 통영의 숨은 비경을 걷고, 여러 곳을 소개할 기회가 있으리라 기다려진다.
 글 : 김봉조 낯선트레킹 대장
 사진 : 최찬락 Mnet트레킹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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