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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시장’ 덕수ㆍ영자 사는 남해 독일마을‘발길’
‘국제시장’ 덕수ㆍ영자 사는 남해 독일마을‘발길’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5.01.14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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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흥행 관광객들 증가 산토리니 같은 멋진 전경
파독광부ㆍ간호사 땀방울 유물ㆍ역사기록물 전시관
▲ 남해 물건항을 앞에 두고 독일마을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온 가족이 모여 축제를 벌이는 가운데 홀로 쓸쓸히 자기 방에 앉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던지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의 대사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는 우리 시대 아버지 ‘덕수’의 마지막 대사는 영화 내내 울었던 관객의 눈물샘을 한 번 더 자극한다. 영화가 12일 천만 관객을 바라볼 정도로 소위 대박을 치면서 영화 속 ‘덕수’이자 ‘영자’였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이, 귀국 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남해 독일마을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남해군에 따르면, 겨울철 관광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을 찾는 관광객들은 급격히 늘어, 파독전시관 12월 1주차부터 3주차까지 1주일 평균관람객이 약 1천500여 명이었던 것이 영화가 개봉한 12월 17일 이후인 12월 4주차 4천500여 명, 1월 1주차 7천여 명, 2주차 4천300여 명으로 상당한 신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문화가 살아있는 독일마을 = 남해군 삼동면 물건방조어부림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독일마을이 생긴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이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1960년대 고국을 떠나 외화벌이에 나섰던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은 독일 정착 후 언젠가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남해군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발 벗고 나섰다.

 지난 2000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독일 베를린 등에서 현지 설명회를 개최하고 독일마을 입주민을 모집해 부지를 매입하고 공공시설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반세기 만에 백발이 되어 돌아온 이들은 남해군이 기반 시설을 조성한 이곳에 손수 집을 짓고 살았다.

 그림 같은 절경을 자랑하는 물건항을 앞에 두고, 주황색 기와와 하얀색 벽의 독일식 주택이 한두 채 세워져 마을이 되고, 아름다운 정원들이 생기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관광객들이 이국적인 독일마을을 구경하기 찾아오기 시작한 것. 입소문은 다시 입소문을 낳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져, 이제는 남해군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현재 파독광부, 간호사 출신 17세대, 30여 명이 마을을 이루고 산다. 이들은 독일식 건축양식과 문화가 가득한 주택에 살면서 민박업 등을 하면서 관광객과 독일문화를 공유하기도 하고, 마을 주민들끼리 이억만리 떨어진 독일에서의 삶을 추억하며 오순도순 지낸다.

 이렇게 제2의 고향인 독일을 향수하고 독일문화를 이웃들과 나누기 위해 탄생한 것이 독일마을맥주축제. 축제는 지난 2010년 처음 선을 보이고, 회가 거듭할수록 퀄리티가 높아지고, 인기를 끌면서 지난해에는 ‘경남도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광부ㆍ간호사 삶의 흔적 파독전시관 = 독일마을 주민들은 맥주축제에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독일마을이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자, 파독광부와 간호사로 살았던 그들의 삶과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이러한 바람들이 모여 지난해 6월 독일마을에 파독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파독전시관은 도이처플라처라 불리는 광장을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 독일전통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이 배치돼 있고 지하에는 파독 근로자들의 유물과 역사기록물이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관은 격변의 현대사를 사진과 글로 장식한 타임터널부터 글뤽아우프(독일어‘무사히 지상에서 보자’는 뜻)를 외치며 막장에 들어서는 파독광부들을 형상화한 공간인 갱도, 파독광부와 파독간호사를 테마로 한 전시 공간, 독일에서의 삶을 재현한 공간과 영상체험코너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 공간에는 파독광부들의 탄광생활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착암기, 막장램프, 광부복과 간호사들의 병원생활을 보여주는 청진기, 트레이, 페이스메이커 등의 의료기구 등이 설명과 함께 쇼윈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리고 독일에 정착하면서 사용한 생활용품과 사진, 파독의 역사과정을 알 수 있는 국가기록원의 귀중한 자료 등이 풍부하게 전시돼 있어 역사교육 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파독전시관에는 파독광부 2명과 간호사 4명이 해설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생생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곳에서 만난 파독간호사 출신 해설사 류길자 씨(70)는 “1966년에 간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1살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독일로 갔다. 부모형제 생각에 밤마다 눈물을 훔치고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생활을 하면서 당시 환자였던 독일인 남편도 만나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며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하면서 많은 국민들이 알아주시니 고맙고, 그 시절 생각이 참 많이 난다”고 말했다.

 독일마을과 파독전시관은 대한민국에서 독일을 만날 수 있는 곳이자 독일에서 조국 근대화를 일구었던 한국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전경 뒤에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그것을 극복해야 했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었던 이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땀과 눈물이 배여 있다.

 전시관을 나가는데 출구통로에 전시된 독일마을 주민의 어록이 눈에 띈다.

 “나는 용감했기 때문에 독일로 갈 수 있었고, 지금도 용감하게 산다. 앞으로도 후회 없이 용감하게 내 삶을 개척할 것이다.” (파독 간호사 서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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