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57 (토)
아름다운 인연
아름다운 인연
  • 정창훈
  • 승인 2015.03.01 2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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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시인/칼럼니스트
 수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명함들과 다이어리를 정리하면서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과의 만남, 접속, 접촉을 통한 인연을 생각해보았다.

 살아가면서 좋은 인연이란 사는 동안 우연이든 필연이든 모든 만남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비단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이나 가꾸는 화초도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고 인연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도 인연으로 엮여있다. 피천득은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 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인연도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 명제 앞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회자정리’는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돼 있다는 뜻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아쉬움을 일컫는 말이고 ‘거자필반’은 헤어진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인터넷에서 순전히 나의 방식대로 시도하는 접속은 간접적이면서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형태다. 컴퓨터나 휴대폰의 스크린은 이 시대의 아이콘이자 편리한 정보교환의 수단이지만 인간의 향기를 맡을 수는 없다. 데이터 스모그란 말이 있듯이 과도한 정보는 공해이고 이러한 공해가 인간 영혼의 자리를 갈취하고 있다.

 그런데 인터넷 스크린에서 인간의 향기를 맡을 수는 없었지만 접속을 통해 과거를 볼 수 있고 만날 수도 있고 미래를 말할 수도 있다.

 70년대 말 울산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 방 두칸 있는 아파트의 작은방을 월세로 구했다. ‘잠만 잘 분 구함’이라는 전봇대에 붙은 쪽지 한 장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문간방의 생활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거실에서는 앞발로만 다녀야했고 냉장고에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화장실을 이용하는 시간도 언제나 신경을 써야 했다. 빨래를 해서 베란다에 너는 것도 쉽지 않았던 생활이었지만 온전한 가족의 울타리에서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고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30년이 훨씬 지나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 주인집을 찾아갔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이름을 인터넷에서 검색을 했는데 울주군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접속의 위대함이 진가를 발휘했다.

 접촉은 상호 간의 직접적인 만남이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 공간은 접속이 아닌 접촉의 장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길을 마주치고 목소리를 듣고 함께 웃고 울고 누리는 것이다.

 접속이든 접촉이든 일생을 통해 만나는 모든 인연은 나의 생명이다. 만나는 상대와의 인연에 의해 투영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고 일어서게 하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만날 수 있는 인연은 세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에 또 다른 나와의 만남과 인연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만남을 통해 서로의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남의 말에 그리 관심이 없다. 심지어 한지붕 아래 사는 가족 간에도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할 말을 하지고 않고 서로의 관심을 드러내지도 않고 내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무관심으로 보내고 있다. 서로가 영혼이 없는 삶이다.

 현대인들은 서로 간에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수많은 접속을 하고 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내면의 세계에 귀 기울이는 시간과 공간과 진솔한 만남이 필요하다. 바깥의 현상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영혼이 들려주는 메시지를 받아 수 있어야 한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지 묻고 또 묻고 그 답을 찾아야 한다.

 괴테는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 고 했다.

 우리는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사랑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쉬지 않고 이뤄 가는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만남은 영속될 수 없지만 만남의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연의 끈을 잠시 놓았을 때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이별의 순간에도 아쉬운 마음이 덜해서 덜 괴로울 것이다.

 추운 날씨보다 더 차가운 이 사회에 내게 따뜻한 봄날 같은 마음과 사랑의 인연을 안겨준 도반들이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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