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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농사 풍요 기원 소망 담긴 행사
한 해 농사 풍요 기원 소망 담긴 행사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5.03.02 2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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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세시풍속 남해선구줄끗기
▲ 남해선구줄끗기는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에서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는 민속대동놀이다.
‘道 무형문화제’ 지정 지역 주민 동질성 확인 고싸움 등 5과장 구성

 우리 세시풍속에서 달이 차지하는 비중은 태양의 비중이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큰 것이었다. 예부터 달은 여성, 출산력, 물, 식물과 연결됐고 특별히 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농경문화에서 대단히 중요시했다. 보름달 중에서도 정월대보름달과 팔월 한가위 달을 가장 중시하는데, 한가위가 농사의 풍성한 마무리를 감사하는 행사라면 정월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긴 행사였다.

 지금은 설이 민족 최대의 명절로 자리매김했지만, 과거엔 섣달그믐부터 정월대보름까지 16일간이 축제 기간이었다. 그리고 설과 대보름은 서로 유기성을 가지는 행사로 구성돼 있었는데 설날이 개인적, 폐쇄적, 수직적인 피붙이의 명절임에 비해 대보름은 집단적, 개방적, 수평적인 마을공동체의 명절이었다. 즉, 초승달에서 시작해 점점 차오르는 달의 주기를 통해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에서 우리로의 확장을 보여준다. 이렇게 대보름 달빛은 어둠과 질병, 제액을 몰아내는 밝음의 상징이었고, 개인과 집단 모두를 아우르는 행사였다.

 줄다리기는 대부분 대보름날에 행해졌다.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대지의 풍요를 비는 세시풍속으로 마을 단위 혹은 여러 마을 단위로 두 편을 나누고 줄을 당겨 승패를 가르는 집단적 놀이행사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인 성격을 가진 관습이었다.

 집단적 놀이행사였던 줄다리기는 사회 통합의 원리를 제공하는 기초로 작용했다. 줄을 만드는 작업에서의 협동심과 줄을 당기는 행사에서 가지는 응집력을 통해서 양편의 주민은 결속을 다지게 되는데, 이는 줄다리기가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체 주민의 심리적 일체감을 자극해 지역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남해선구줄끗기는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에서 음력 정월대보름날에 세시풍속의 하나로 행해지는 민속대동놀이다. 그 이름에서 지명을 빼고 남은 ‘줄끗기’는 ‘줄’과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힘을 가하다’라는 뜻을 지닌 ‘끗다’의 명사형인 ‘끗기’를 합친 합성어로 ‘줄을 끄어당기다’라는 뜻이다.

 그 유래가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명맥이 끊어졌다가 해방 이후에 간간이 행하던 것을 1991년 남면 선구마을에 거주하는 김찬중(1931년생, 남)이 그 원형을 복원해 재현했다. 이후 남해선구줄끗기는 1993년 제25회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고, 2003년 6월 12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해선구줄끗기는 당산제와 어불림, 필승고축, 고싸움, 줄끗기, 달집태우기 등 모두 5과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과장을 진행하기에 앞에 먼저 고와 줄을 준비하고, 남변과 북변으로 편을 가른다. 고와 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짚은 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갹출하고, 짚이 모이면 남변은 바닷가에서, 북변은 당산에서 새끼를 꼬고, 이것을 다시 꼬아 큰 고를 만든다. 완성된 고는 마치 용을 닮았는데 이는 물의 관리가 절대적인 벼농사에서 비를 얻고자 하는 믿음과 연결된다.

 고가 완성되면 정월대보름날에 남변과 북변이 각각 고를 메고서 각자의 당산에서 풍농,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축문을 읽고 당산제를 지내며, 자신의 소망도 같이 기원한다. 당산제가 끝나면 풍물을 앞세우고 인근 마을을 순회하며 응원군을 초청하면 각 부락에서 지원하게 되는데 이를 어울림의 남해방언인 어불림이라고 한다. 인근 마을의 지원과 응원군들의 힘을 합세해 선구마을로 들어오면 양편은 각각 장내를 한 바퀴 돈 다음, 필승과 풍농, 풍어를 비는 축문을 크게 발성하고 기원하는 필승고축을 한다. 이윽고 고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고를 맞대고 밀기 시작해 이기는 편이 숫고가 된다. 숫고가 되면 줄끗기에 이길 확률이 많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밀기 시작한다.

 암고와 숫고가 결정되면, 양편의 고를 서로 맞대고 빗장으로 서로 연결한 후 본격적인 줄끗기를 시작한다. 이때 여자들은 자기편의 줄을 무겁게 하기 위해 바닷가에 있는 몽돌을 주워서 줄과 함께 움켜잡고 줄에 매달린다. 승부가 결정되고 둥근 보름달이 뜨면 한해의 액을 날려 보내는 달집을 태우면서 줄끗기의 승부와 관계없이 모든 마을이 참여해 망월대동굿을 하면서 화합과 친목을 다지고 마을의 안녕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한마당 축제가 펼쳐진다. 달집태우기가 끝나고 고의 줄을 잘라 논밭에 뿌리면 풍농이 들고, 배 위에 놓으면 풍어가 되며, 태워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줄을 나누어 모두 가져간다.

 매년 그래왔듯이 올해도 남해군 남면 선구마을 몽돌해변에서는 줄끗기 행사가 펼쳐진다. 오는 5일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이번 행사에는 선구마을 주민들과 남면 모든 마을 이장,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 등이 참여해 남해군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선구줄끗기의 전통을 널리 알릴 계획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줄끗기는 과거의 농경의례적 기능은 많이 퇴색했으나 소통과 공감의 사회통합을 외치는 현대사회에서 전체 주민의 심리적 일체감을 자극해 지역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전통 세시풍속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남해선구줄끗기 행사가 계속 전승돼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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