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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는 꼬끼오
새벽 여는 꼬끼오
  • 정창훈
  • 승인 2015.03.10 2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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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훈 시인/칼럼니스트
 주말에 대청계곡에서 만난 지인은 비닐하우스에서 닭을 키운다고 해서 설렘으로 따라갔는데 들판에서 야외활동을 하고 있는 성계 30여 마리를 만날 수 있었다. 배산임수의 위치도 훌륭했지만 농장에는 닭들을 위한 침실, 거실, 식수대가 갖춰져 있었다. 농장의 박 대표가 나타나자 전원 마중을 나오고 그 주위로 모이고 호위를 시작했다. 주인이 먹을거리를 들고 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기억력이 좋지 못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 ‘닭대가리’다. 닭의 지능지수가 10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 농장의 닭들은 하나같이 두뇌회전이 민첩하고 조직화가 잘 돼 있었다. 닭에게도 분명 감정이 있어 보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닭대가리도 되고 닭 머리도 되는 것 같다.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그의 저서 ‘총ㆍ균ㆍ쇠’에서 가축화된 동물이란 인간이 번식과 먹이 공급을 통제하는 동물, 즉 감금상태에서 인간의 용도에 맞도록 선택적으로 번식시켜 야생 조상으로부터 변화시킨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가축화에는 야생 동물을 인간에게 더 유용한 동물로 개량하는 과정이 포함돼야 한다. 야생동물이 가축화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온순해야 하고,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고 먹이가 저렴해야 하고, 질병에 면역성이 있어야 하고, 성장이 빨라야 하고, 감금상태에서도 잘 번식해야 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은 고기, 알, 깃털 등을 얻기 위해서 많은 조류를 가축화했다. 중국에서는 닭, 유라시아 의 여러 지역에서는 오리나 거위류,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칠면조, 아프리카에서는 뿔닭이 각각 가축화됐다. 닭은 현재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야생하고 있는 들닭이 사육, 개량된 것이며 기원전 6ㆍ7세기경부터 사육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축을 소유한 인간 사회의 경우 가축이 인간에게 먹거리를 제공하는 이유는 고기, 젖, 비료, 쟁기를 끄는 것 때문이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며 가장 직접적인 것은 가축화된 동물들이 각 사회에서 야생 사냥감을 대신해 주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는 점이다. 닭은 달걀과 고기를 얻기 위해 기르는 가축이다.

 우리나라의 닭은 이미 신라의 시조 설화와 관련돼 등장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의 탄생담에 의하면 “신라왕이 어느 날 밤에 금성 서쪽 시림 숲 속에서 닭의 울음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호공을 보내어 알아보니 금빛의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서 그 궤를 가져와 열어보니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는데, 이 아이가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됐다”고 했다. 그 뒤 그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고 했으며 신라의 국호로 쓰이기도 했다. 이러한 설화에서 닭이 이미 사람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고향 동네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집집마다 닭을 기르기 때문에 새벽이 되면 닭 울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먼저 닭울음 소리를 잘 내는 닭이 “꼬끼오”하고 소리를 냈다. 이렇게 어느 집닭이 울기 시작하면 이집 저집 닭들이 연이어 덩달아 울어대기 시작한다. 닭 세상이다. 닭들은 새벽에 목소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다. 첫 닭울음 소리에 하늘이 열리면 세상도 비로소 눈을 뜨고 일상이 시작된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여명을 알리는 보신용으로도 닭을 요긴하게 여겼다. 고려의 닭이 다른 어느 나라의 닭보다 시간을 정확히 잘 맞춘다고 해 고려 시대 왕궁에서는 자시(밤 12시)에 우는 닭인 일명계, 축시(밤 2시)에 우는 닭인 이명계, 인시(새벽 4시)에 우는 닭인 삼명계를 함께 길러서 시간을 알렸다. 새벽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도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 왔다. 내게 닭울음 소리는 고향의 소리다. 지난날을 추억하는 향수의 소리다. 오랜만에 신이 났다.

 한편, 닭은 서조인 꿩을 대신하는 길조로 인식됐다. 그래서 집안의 잔치나 혼례에는 닭이나 달걀을 사용한다. 설날 떡국에 닭을 넣었고, 혼례 초례상에 수탉과 암탉을 청ㆍ홍보에 싸서 탁자 위나 아래에 놓았는데, 닭 울음처럼 혼례도 밝고 신선한 출발이 되라는 뜻을 담았다고 전한다.

 닭도 먹이를 주면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꼬꼬’거리고 낯선 사람을 보면 무섭다고 ‘꼬꼬댁’하고 소리를 지른다.

 닭을 닭처럼 키우면 조류독감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실제로 토종닭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한다. 그만큼 건강하고 면역성이 뛰어나 육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동안 그곳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즐기는 닭들을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길에 방금 낳았다는 따끈따끈한 달걀을 선물 받았다. 햇빛 속에서 빛나는 황금란이다. 닭답게 살고 있는 행복한 닭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꼬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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