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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惠院(광혜원)
廣惠院(광혜원)
  • 송종복
  • 승인 2015.03.11 2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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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廣:광 - 넓히다 惠:혜 - 베풀다 院:원 - 건물

 최초로 세운 서양식병원이다. 여태껏 약물로만 치료하던 것을 칼로서 수술을 했다. 처음 수술로는 명성황후의 손목 수술과 조카 민영익의 복부 수술이다. 외과수술의 효시이다.

 1884년에 선교의사 앨런(Allen : 安蓮)이 미국공사관의 의사로 있던 중 우정국 사건 때 칼에 맞아 쓰러진 민영익(명성황후의 조카)의 생명을 구한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의 보조금도 받고, 당상관이란 품계도 하사받았다. 1885년(고종 22년) 2월 29일에 종로 재동에 있는 홍영식의 집(헌법재판소 자리)에 세운 최초의 서양식 병원을 광혜원(廣惠院)이라 하다가, 3월 12일에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칭했다. 진료업무가 폭주하자 1886년 11월에 왕실 소유지 구리개(을지로 입구ㆍ한국외환은행 본점)로 옮겼다. 이후 스크랜턴(Scranton), 헤론(Heron), 하디(Hardie), 빈턴(Vinton), 에이비슨(Avison) 등의 의료선교사들이 줄줄이 입국했다.

 1886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개원 후 1년 동안 1만 460명의 환자가 진료했다. 그중 말라리아가 가장 많았고 그 외 소화불량, 피부병, 성병(매독), 결핵, 나병, 기생충병, 각기병 등이었다. 이에 의료기구 구입비로 250달러를 지원했다. 의사양성도 필요해 전국의 14~18세의 총명한 청년 16명을 선발해 교육시켰다. 그러나 운영의 재정난, 선교사 교수의 기독교 선교에 대한 거부감, 출세를 위한 과거 응시로 전환, 언어와 교재문제 등으로 의사양성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단 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1894년 청일전쟁으로 인해 제중원의 운영권을 미국 북장로회에 이관됐다. 이때 제중원을 운영하던 에비슨(Avison : 魚丕信)은 ‘세브란스’로부터 거액을 기증받아 숭례문(남대문) 밖 복숭아 골(桃洞 : 서울역 앞 연세재단빌딩)에 신축해 세브란스병원이라 했다. 1913년에 ‘세브란스 연합의학교’로, 1917년에는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로, 1942년에 ‘아사히 의학전문학교’로, 1947년에 ‘세브란스 의과대학’으로, 1955년 5월 25일에는 신촌동에 병원을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2006년 5월 20일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연설하려 단상에 오르는 박근혜 당 대표가 테러당했고, 지난 5일 세종홀에서 ‘민화협’이 주최하는 조찬강연초대에 미국대사 ‘리퍼트’가 테러당했다. 어쩌면 일맥상통한 일이었을까. 장소도 연설ㆍ강연준비 중이며 흉기종류도 칼, 피격당한 곳도 오른쪽 얼굴, 상처의 길이도 11㎝, 치료받은 병원도 세브란스병원, 테러범 나이도 50대 후반 등 어쩌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기가 막힐 일 들이다. 좀 ‘아이러니칼’하게도 정보형사가 있을 텐데 속수무책인 점이다. 이번 미국대사의 행위에 많은 교훈을 시사했다. 침착한 점, 한ㆍ미동맹을 우선 생각한 점, 국민에게 감사한 점 등 그의 애국심의 교훈을 이번 기회로 우리도 대오각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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