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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계급과 사회계급
유한계급과 사회계급
  • 권우상
  • 승인 2015.03.18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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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상 명리학자ㆍ역사소설가
산업 사회ㆍ명성의 기준인 금력
부유층, 과시적 소비로 부 입증

 유한계급(有閑階級)은 소유권이 발생하면서 함께 등장했다. 생산능률이 향상돼 생산 과정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호구지책(糊口之策)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부(富)를 축적하고 있는 계급이 생계 유지나 육체적인 안락보다는 다른 사회계급(노동계급)과 자신이 별다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축적되는 재산은 우월과 성공의 지표이며, 명성과 존경은 사회적 기초가 된다. 부(富)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충족되는 일이 없으며 무한정으로 계속된다. 따라서 금전적 경쟁이 축재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다. 금전적 경쟁에 있어 하층 노동계급은 근면, 성실, 검소하게 되지만 상층 지배계급은 그와 반대로 부(富)와 능력을 입증함으로써 더 많은 금전을 얻으려고 한다. 부정이나 비리도 여기에서 생긴다.

 유한(有閑)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부(富)와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된다. 여기서 유한(有閑)이란 것은 나태나 무위(無爲)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비생산적 소비‘ 즉 한가롭게 뭣인가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생산적 노동은 천하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게으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금전적 능력의 증거로서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유한계급은 비유형적(非有形的) 재화(財貨)나 인간생활에 직접 공헌하지 않는 음악. 연극, 영화, 스포츠, 가구. 실내장식 등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유한계급은 생산적 노동에서 면제된 가정 고용인을 두는데 이들은 주인의 임금지불 능력의 증거로써 이용되며 이들의 한가로운 생활은 주인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대행적 유한(代行的 有閑)’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유한계급은 가치 있는 재화를 남에게 보이려는 과시적으로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부(富)를 입증하려고 한다. 귀부인들이 최고급의 음식, 의복, 주택, 가구, 실내장식 등을 소비하는 것이나 남성의 과음, 유흥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음이나 유흥으로 생긴 질병조차 고귀한 품위와 동의어(同義語)로 되고 돈이 많이 드는 악덕의 증상이 우위자의 표시가 된다. 값진 선물을 하거나 엄청난 비용이 드는 연회를 베푸는 것도 호의를 얻기보다는 자기의 경쟁자와 비교하려는 목적을 위한 수단의 측면이 강하다. 유한계급은 시종, 가신, 하인을 부양하는데 이들은 주인의 명성을 높이는 존재들로서 ‘대행적 소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화된 어느 산업사회에 있어서나 궁극적으로 명성의 기준이 되는 것은 금력이며 또한 권력을 과시하고 명성을 획득, 유지하기 위한 수단은 유한과 재화의 과시적 소비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하층 계급에서도 적용되며 이때 과시적 소비는 처자(妻子)에 의해서 수행되고 있다. 명성을 얻기 위해 행해지는 과시적 유한과 과시적 소비의 효용은 모두 공통적으로 낭비라는데 있다. 과시적 유한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요, 과시적 소비는 재화의 낭비이다. 이 모두는 부(富)를 과시하는 방법이다. 경제발전이 진행되고 사회 규모가 팽창하게 되면 유한(有閑)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는 반면 재화의 과시적 소비는 상대적, 절대적으로 더욱 중요하게 되고 마침내는 최소한의 생계를 제외한 모든 재화를 흡수하게 된다.

 과시적 낭비의 필요성 때문에 금전상의 생활수준은 끝없이 상승하며 처음에는 낭비로 보이던 생활수준이 이제는 생활양식의 불가결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의복에의 지출은 금전적 과시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것은 남성의 동산(動産) 격인 여성의 의복에 잘 적용된다, 금전적 성공을 과시하는 좋은 옷이란 첫째로 비싸야 한다. ‘우리 남편은 이 정도의 돈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출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둘째로 착용자가 생산적 노동을 하는 데에는 크게 불편해야 한다, 하이힐, 스커트. 코드, 모자 등을 쓰고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은 ‘나는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함이다. 셋째로 최신 유행의 것이라야 한다. 유행이 바뀌는 것은 유한계급이 다른 사람과 자신이 구별되도록 해 자신을 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유한계급이 선호하는 장대한 가정의 혼사(婚事)나 장사(葬事) 의식이 가지는 경제적 의의는 재화 및 용역의 과시적, 대행적 소비이다. 고등학문은 부유층과 같은 대행적 유한계급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으로 유한계급의 자기 과시의 수단이 된다, 대학 졸업식에서의 학사(박사)모와 학사(박사)복을 착용하는 학위수여식 등은 유한계급이 일반인과 대학인을 구별 짓기 위한 과시(誇示)이다. 이런 유한계급의 자기 과시가 21세기 오늘날에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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