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1:17 (금)
성완종 게이트 혼란 부추기는 언론
성완종 게이트 혼란 부추기는 언론
  • 박태홍
  • 승인 2015.04.20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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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이렇게 살아가는가 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 닥쳐온 일을 해내고 내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어제의 일 나아가서 한 달 전, 일 년 전의 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곧잘 잊어버린다. 이는 지나간 일상의 흔적을 되찾아가면서 살아가기에는 우리들 뇌의 용량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다가온 오늘을 살아가기에도 벅차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9일 경남기업 전 회장 성완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이 나라의 정치권은 혼비백산이다. 죽으면서 남긴 모 신문사와의 전화 인터뷰 녹음 파일과 메모지 1장이 이렇게 이 나라의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성완종 게이트가 남긴 검은돈의 거래다. 성 전 회장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기록된 8명의 정치인 중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제외한 7명은 현 정권의 실세들이어서 파장은 더하다.

 허태열ㆍ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이 나라를 움직였거나 움직이고 있는 실세들이어서 그 파문은 일파만파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녹음 파일과 메모지 1장을 남겨뒀지만 더 이상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완종 게이트에 거명되고 있는 산자는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방어에 일관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실인데도 국정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질 못하고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국회 대정부 질문 나흘 동안 성완종 게이트와 관련, 야당의 공격적인 질의와 여당의 방어적 답변만 있을 뿐 국정 진전은 없었다. 이 또한 신문에서 언급된 이미 보도된 사실을 의원들이 다시 한 번 추궁하는 선에서 그쳤다. 게다가 각종 언론매체도 사실보도 보다는 앞서 나가는 보도 형태를 취해 국민들을 혼동시키고 있다.

 경남기업 성 전 회장이 살아있을 때 정치권에 보험형식으로 뿌린 돈의 규모는 정확하게 알 길 없으나 죽기 전 자기 스스로 발설한 금액은 15억여 원에 불과하다. 이것도 망자가 죽기 전 녹음한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서로 간의 신뢰에 의해서다. 2002년 한나라당의 차떼기 대선자금에 비하면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선이 끝나고 검찰 수사과정에 의한 대선 불법자금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847억 9천만 원 새정치민주연합 전신의 민주당 119억 8천700만 원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최근의 성완종 게이트에 대해 당혹감은커녕 잠재돼 있었던 일이 이제야 불거졌을 뿐이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다만 국민들이 분개하고 혼돈하고 있는 것은 비리 혐의로 수사 선상에 있는 기업 총수가 죽으면서 남긴 하소연 형태의 녹음파일과 실체도 알 수 없는 메모지 1장 때문에 나라 전체가 뒤틀리고 있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스럽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앞으로의 상황도 법을 통한 법에 의해 치러나가면 된다. 그리고 나랏돈과 회사 돈을 마구잡이로 횡령한 비리혐의를 받아왔던 망자를 그 어느 누구도 잘못했다고 질책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또한 이 나라 정치권의 병폐 아닌가 한다. 게다가 비리 혐의로 검찰의 수사 선상에 있는 경남기업 몇몇 간부들이 조선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살생부란 카드로 이 나라 정치권을 협박하는 듯한 뉴스가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트라우마에 빠져드는 듯 망연할 뿐이다.

 살생부란 1453년(단종 1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죽일 사람과 살릴 사람을 구분한 명부를 말하는 것으로 계유정난의 단초가 되기도 한 역사 속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나라의 지식인이라고 인정받고 있는 각 방송사의 패널들이 사실도 확인하지 않은 자기만의 생각을 여과 없이 방송, 국민들을 혼돈에 빠트리고 있는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언론의 윤리를 저버린 몇몇 언론매체들의 특종을 위한 진흙탕 싸움 또한 국민들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각종 언론매체는 진실과 사실보도만이 언론의 사명이며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구독자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흥미 위주의 앞서 나가는 추측성 보도는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줄기처럼 늘어나는 여ㆍ야 정치인들의 비리혐의는 사정 당국에 맡기고 언론은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법 테두리 안에서의 진실보도만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죄 원칙에 의한 비리혐의자 즉 피의자의 실명 거명 또한 언론 스스로가 자제해야 할 사안 아닌가 한다.

 지난 14일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대정부질문에서 말한 “로비가 통하는 정권과 로비가 통하지 않는 정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며 지금의 성완종 게이트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

 지난 일을 망각하고 자승자박하며 여론의 중심에 선 정치인들을 생각하면서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았어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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