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1:02 (토)
봉은 하나, 봉황이라 둘이다
봉은 하나, 봉황이라 둘이다
  • 안명영
  • 승인 2015.06.02 2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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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삼국지에도 등장한 봉명산
걸음마다 생각 꼬리 물어
주말 가족과 함께 찾아보길

 바쁘다고 하니 하동 봉명산을 향해 혼자 나섰다. 적송 가지로 하늘을 가리며 연륜이 덕지덕지 낀 노송 사이로 걷는다. 고개를 꺾어 한참 지나자 공터를 만나고 멀찍이 소라 고동 닮은 바위에 ‘어금혈(御禁穴)ㆍ봉표(封表)’로 새겨 바닥을 주색으로 마무리 했다. 첫 글자를 어(御)로 해 임금과 관련된 내용이라 호흡이 급해지더니 숨이 막힌다. 역시 ‘어명으로 다솔사 도량에 묘 자리를 금한다’라고 안내됐다.

 적막한 산속에서 빨간 색은 호랑이 혓바닥으로 연상돼 으스스하다. 식은땀을 닦고 살피는데 ‘경계 지점을 나타내는 표(標)’로 돼야 제격인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의 표(表)’로 했다. 무슨 급박한 사연이 있는 듯….

 정상에 봉명정이 반겨 좁은 계단으로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절반은 섬으로 둘러싸인 호수인 듯 바다이고 나머지는 산이로다.

 정상에서 내리막길은 안전 줄을 잡고 한발 한발 옮기면 비 오듯 땀이 흐르고 다리는 후덜 거리지만,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전경으로 보상을 받는다. 김동리 소설 ‘진달래’의 배경으로 적합한 보안암과 이명산, 금오산이 얼굴을 보여준다.

 봉명산은 삼국지에도 나온다. 조자룡은 수천의 군사로 위나라 한덕의 수만의 강병과 봉명산에서 대치한다. 한덕은 홀로 만 명을 당할 용맹을 지녔고 아들 넷도 무예에 뛰어났다. 조운은 일흔에 창과 칼 및 활로 오 부자를 죽였다. 조운의 창술은 대적할 자 없고 청홍검은 쇠를 진흙 베듯 한다. 이 전투로 조운은 찬연히 봉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능선을 내려와 헬기장을 지나 약수터로 향했다. 돔형의 천장을 보고 접근하자 ‘웅웅’하는 모터 소리가 울리더니 돌 조각 용의 입에서 물이 ‘콸콸’ 쏟아진다. 이는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근방에 하늘을 향해 금속판을 깔았는데 솔라 셀이다. 태양빛을 전기로 바꾸어 적외선을 방출, 샘으로 접근하는 물체가 감지되면 모터가 작동되고, 물을 공급하며 자외선으로 소독하는 광촉매 UV살균장치다. 깊은 산 속에서 소독된 물을 먹을 수 있다니.

 봉이 날개를 접은 봉일암을 보고 녹차 밭을 지나 도량에 들어섰다. 안내판에 봉명산은 봉황새가 노래하고 낙남정맥이 맺힌 곳, 산의 기운이 모인 지점에 봉황새 모양의 절을 지어 다솔사가 됐다.

 낙남정맥(洛南正脈)은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의 영신봉에서 동남쪽으로 흘러, 북쪽으로 남강의 진주와 남쪽의 하동ㆍ사천 사이로 이어져, 동쪽으로 마산ㆍ창원 등지의 산으로 연결돼 김해의 분성산에서 끝난다.

 봉명산을 봉황새가 노래하는 산이라는 해설에서, 봉황은 용과 학이 교미해 낳은 상서로운 새라 수컷을 봉이요 암컷은 황이다. 대통령 문장은 봉황이며 마주 보게 새겼다. 봉황을 봉이라 하면, 부모를 아버지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모’의 한쪽은 부이며 나머지는 어머니인데 말이다. 바른말은 학생의 교육 효과를 높이는 요소가 되니 표현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봉명산을 가족과 함께 찾는다면, 미리 표(表)와 표(標)의 구별, 소설 진달래 읽기, 봉황새 조사, 각지의 봉명산 검색, 태양전지 등의 자료 준비를 철저히 해 땀 흘려, 휴식을 취할 때마다 이야기를 풀어 놓아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은 사이버 세계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마음이 맞다면 다 함께 근처의 산으로 떠나고 싶다. 대화가 단절되고 모두가 스마트폰만을 바라보는 이곳을 떠나서 가족들과 나의 자녀들과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디로든 떠나지 않으면 자녀들은 또다시 사이버 세계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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