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6:13 (금)
요리방송 시대의 단상
요리방송 시대의 단상
  • 박태홍
  • 승인 2015.07.20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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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엊그제 초복을 지낸 것 같은데 내일모레면 중복이다. 초복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의 절기인 삼복 중 가장 먼저 더위가 시작되는 복날로 1년 중 가장 해가 길게 떠 있다고 하는 하지 이후 셋째 경일을 말한다. 여기서 복은 엎드릴 복(伏)으로 음기가 양기에 눌려 바짝 엎드렸다는 뜻이다. 그만큼 복날부터는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라 할 수 있다. 이런 관계로 우리 선조들은 복날이 되면 무더위를 견뎌 낼 수 있는 영양가 높은 음식을 찾아 먹었다. 주로 육식과 더불어 제철에 나는 채소를 곁들여 먹으면서 무더위를 이겨내려 했다. 그 재료가 무엇이든 간에 주로 탕종류였다. 갈비탕, 도가니탕, 곰탕, 보신탕, 삼계탕, 장어탕, 매운탕, 추어탕 등등.

 지금은 음식점 골목에 나가면 쉽게 구해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예전에는 사전준비 없이는 복날에 때를 맞춰 먹을 수 없는 그런 음식들이었다. 이 같은 탕종류에는 단백질과 아미노산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단백질과 아미노산 섭취로 성장호르몬분비를 촉진시키고 활력을 증진시켜 우리들 선조들은 무더위를 이겨 나갔다고 한다. 열무김치와 고추장으로 쓱싹 비벼 보리밥 한 그릇을 먹어치우던 시절 육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탕으로 업그레이드된 밥상을 받는다면 충분한 영양가가 곁들인 몸보신의 차림상 아니겠는가? 지금은 사람도 변했고 음식도 진화됐다. 이 때문인가? 인간들의 삶의 목표가 웰빙에서 힐링으로 잠시 옮겨가는가 싶더니 지금은 음식에 두고 있는 듯, 지상파를 비롯한 모든 종편들이 요리방송에 목을 걸고 있는 듯하다.

 요리방송 또한 다양하고 각양각색이다. 방송사마다 저마다의 새로운 컨셉으로 시청률을 높이려 한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개그맨 4명을 등장시켜 전국 곳곳의 맛집을 돌며 음식을 먹어대는 프로가 있는가 하면 한식, 양식, 일식의 대가들을 심사위원으로 등장시켜 요리경연을 하는 등 폭넓은 다양한 프로로 육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정직한 밥상, 요리의 달인 등을 발굴, 양산시키고 있기도 하다. 진주만 하더라도 비빔밥과 냉면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한 업소에는 붐비는 손님으로 발 디딜 틈이 없는 현실이다. 이는 방송과 언론의 저력이 아니고서는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겠는가? 예로부터 비빔밥과 냉면의 고장이었던 진주가 인류의 영원한 주제인 음식에 의해 한 번 더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먹거리가 풍부한 산을 끼고 있는 강가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이를 보더라도 인간과 음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람들의 영원한 주제 아닌가?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의 회답은 아직도 그 어느 누구도 풀지 못한 미스터리일 테지만 인간에 있어 가장 근접한 것은 공기 다음으로 먹는 음식임에 틀림이 없다. 지상파를 비롯한 여러 종편의 음식 방송은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전의 음식방송은 프로그램 구성을 위한 그리고 정보전달을 위한 코너였다면 지금은 메인프로그램으로 육성해나가고 있음을 볼 때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오욕 중 제일 참을 수 없는 게 식탐이라고 한다. 배고프고 먹고 싶은 것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 중 하나다.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TV자막에서는 인기 연예인들이 ‘흐음’, ‘커어’하며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내보내 진다. 시청자들의 먹고 싶은 충동을 그리고 구미를 당기게 하는 각 방송사의 요리 방송이다. 이들 프로그램은 과거 허기짐을 달래고 보상받고 싶은 우리들의 심리에 편승, 시청률을 오르게 한다. 그 어느 누가 보아도 사치스럽고 소비를 조장 하는 모습들이다.

 이로 인한 국민들의 외식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발표된바 있다. 이와 때를 맞추기라도 하듯 대기업의 먹거리 사업이 동네 골목까지 잠식하기도 했다. 허기를 달래던 시절의 여름 보신탕 또는 삼계탕 한 그릇으로 일 년의 영양섭취를 다한냥 으스대던 그런 때가 있었음을 우리들은 깨달아야 한다. 우리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음도 기억해야 한다. 인간과 음식은 불가분의 관계지만 아직도 배고픔의 시절을 잊지 못하고 먹는 것에 껄떡이고 안주하는 그런 국민이 돼서야 쓰겠는가? 물론 배부름이 배고픔보다 좋지만 배가 너무 부르면 병이나게 된다. 논어의 옹야편에 나오는 과유불급에 따른 얘기다. 제철에 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잘 챙겨 먹고 다가올 중복과 말복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 또한 인간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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