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巡狩碑(순수비)
巡狩碑(순수비)
  • 송종복
  • 승인 2015.07.22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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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巡:순 - 돌아다니다 狩:수 - 사냥 碑:비 - 돌기둥

 왕이 민정을 살핀 곳에 순수비, 영토의 확장에는 척경비, 신하가 충성을 맹세한 곳에는 회맹비가 있다. 창녕비는 ‘순수관경’의 내용이 없어 척경비라 하고 있다.

 순수라는 말은 천자가 천하를 돌아다니며 천지산천에 제사하고, 지방의 정치와 민심을 살피던 고대 중국의 풍습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각지의 산에 올라 산천에 제사한 뒤, 순수비를 세워서 진나라의 덕을 찬양하게 했다. 따라서 창녕 만옥정 공원에 있는 비석은 순수비(巡狩碑)ㆍ탁경비(拓境碑)ㆍ회맹비(會盟碑) 중에 어떻게 불 것인가.

 진흥왕이 세운 비석은 창녕비ㆍ북한산비ㆍ황초령비ㆍ마운령비 등이 있다. 이 중 순수비는 모두 험준한 군사 요새지에 서 있다. 삼국 통일의 전진기지에 세워진 셈이다. 창녕의 경우 낙동강 유역을 점령함으로써 백제와 여러 가야의 세력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고, 중국과도 통할 수 있는 요지이다. 이런 점에서 창녕은 영토의 확장에서 순경비(巡境碑) 또는 척경비(拓境碑)라고도 본다.

 이 비석은 원래 화왕산 기슭에 있었는데 소풍(산보: 散步) 간 학생의 눈에 띄어 그 존재가 드러났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고적 조사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진흥왕의 비석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후 1924년 현재의 만옥정 공원으로 옮겼다. 비문에는 643자인데 판독된 것이 400자로 왕이 42명의 신하를 데리고 와서, 이 점령지에 대한 통치와 포부를 밝혔다. 또한 이들의 이름과 계급이 기록돼 있다.

 이 비석을 세운 년대는 561년(진흥왕22) ‘辛巳年二月一日立’으로 보아 발견 당시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으로 보고 있으나, 최근에는 포항 중성리비(눌지왕. 441), 영일 냉수리비(지증왕. 503), 울진 봉평비(법흥왕. 524), 영천 청제비(법흥왕. 536), 담양 적성비(진흥왕. 551)가 더 오래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창녕에는 진흥왕의 순수비, 대원군의 척화비, 서 3층탑. 객사, 석빙고, 횡혈식적석묘 등 문화재가 많다. 당시 신라의 동편에는 석가탑이요 서편에는 창녕 술정리탑이다. 또한 석빙고도 동은 경주에, 서는 창녕에 있다고 했다. 이같이 창녕에도 문화재가 많아 경주와 어금버금한데도 경주에 비하면 창녕의 문화재는 홀대받는 기분이 많다. 하루바삐 홍보해 ‘경북 하면 경주요 경남 하면 창녕’이란 문화의 쌍벽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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