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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70주년/정치]이념 갈등 뛰어넘어 국민통합시대 열어나가야
[광복70주년/정치]이념 갈등 뛰어넘어 국민통합시대 열어나가야
  • 오태영 기자
  • 승인 2015.08.12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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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제 폐해 많아 국민통합 큰정치 필요 대북 대응 정권마다 바꿔
 대한민국의 해방 70년사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된다. 서구열강에 침탈당하고 일제의 압제를 당해야 했던 허약한 조선을 딛고 비록 자력에 의한 해방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 우리 스스로 써내려간 역사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럽고 명예스러운 역사였다.

 그러나 해방 70년의 역사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극심한 좌우대결과 민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해야 했고 독재에 맞서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싸워야 했다. 국민은 모든 정권에서 만성적인 권력형부패를 지켜봐야 했다. 고질적인 좌-우, 보수-진보의 이념대결과 지역감정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 마산 성지여고생들이 김주열 열사의 영정에 꽃다발을 바치기 위해 행진하며 ‘독재타도’, ‘학원의 자유보장’을 외치며 질서정연하게 마산경찰서를 지나 시내 중심가로 행진하고 있다.

 민주화의 완성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정은 피와 고통의 역사였다. 자유당의 횡포와 부정선거를 3ㆍ15의거와 4ㆍ19혁명으로 분쇄하며 12년 집권의 이승만 정권을 하야시켰고 이어진 장면정부에서도 또 하나의 민주실험을 거쳐야 했다.

 이승만 정부는 부산정치파동, 발췌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권위주의적 박정희 정권에서는 우리 헌정사의 오점으로 기록되는 3선개헌, 유신헌법으로 인권이 유린당하며 압제에 신음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끊임없는 염원은 부마항쟁과 10ㆍ26으로 유신체제를 붕괴시켰다.

 유신체제의 종식으로 찾아온 80년 서울의 봄은 우유부단한 최규하 정부와 제어되지 않은 민주화의 욕구 분출로 신군부에게 정권장악의 빌미를 제공하며 또다시 민주화의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는 야권의 분열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전두환의 5공화국은 압도적 여당에 준 여당 성격의 야당, 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등의 억압적 기구에 의해 민주주의를 짓눌렀다.

▲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전개된 시민과 학생들이 유신 정권 타도를 외치며 시가지를 행진하고 있다.

 만성적인 이념ㆍ계급갈등

 대한민국은 해방과 동시에 극심한 좌우대립을 경험했다. 좌익은 북한에 둥지를 틀고 북과 남한에서 우익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남한의 좌익세력은 건국준비위원회를 장악해 좌경화한 다음 전국임민대표자대회를 열어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 결정하기도 했다. 한때 당원수 60만에 달했던 남한 공산세력은 1946년 5월의 정판사위폐사건, 1948년 전국적 파업 강행, 제주도 폭동사건 등으로 남한의 적화를 기도하기도 했다.

 남북합작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두고 이승만, 김구 등 당시의 정치지도자들은 분열했으며 신탁통치를 두고 좌익과 우익이 대립했다.

 신군부시대에 들어서는 오늘날에도 보수-진보간에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반미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조성된 남북화해무드로 생긴 안보의 구멍도 보수와 진보 간에 극심한 대립양상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도 북한문제는 우리의 정치와 사회에 숱한 논란을 낳는 상수로 작용하며 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

 신자유주의가 확대된 2000년대 들어서는 벌어지는 빈부격차를 두고 보수와 진보간에 이념 갈등을 벌이더니 현재는 이념과 계급갈등이 복합된 모습으로 확대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개혁의 1순위가 되고 있으나 복잡한 이해관계 구조 때문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사, 노-노 갈등이 복합된 이 문제는 대한민국을 분열시킬 핵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1987년 6월 10일 민주항쟁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열사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끊이지 않는 권력형 부패

 모든 정권이 권력형 부패로 좌절한 것은 우리 헌정사의 오점이다. 자유당 정권이 그랬고 18년 철권통치를 했던 박정희 정권도 피해가지 못했다. 두 지도자 모두 자신은 청렴했으나 주변의 권력가들은 항상 부패의 중심에 있었다.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은 노골적으로 돈을 끌어모아 부정축재로 얼룩졌다.

 그다음의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부는 측근과 아들 문제로, 김대중 정부는 아들의 구속, 각종 게이트, 옷로비사건 등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 노무현 정부는 친인척, 측근이 개입된 박연차 사건으로 386정치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다. 노무현 정부의 타락은 진보진영조차 실망시키며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와는 다소 달리 정경유착이 문제가 됐다. 22조의 4대강사업, 31조의 자원개발사업을 두고 지금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 2009년 5월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헌화를 마치고 권양숙 여사와 인사를 하며 통곡을 하고 있다
 풀리지 않는 지역주의

 지역감정이 표면적으로 표출된 것은 63년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가 “우리 경상도 사람 대통령으로 한번 뽑아보자”고 호소한 것이 시작이다. 당시 김사만은 윤보선의 선거유세에서 “부산, 대구는 빨갱이가 많은 곳”이라고 해 윤보선이 영남에서 참패하는 원인이 됐다.

 1969년 광주 유세에서는 “영남지방은 고속도로까지 개설하는데 박정희의 대선공약이었던 호남선은 복선마저 제대로 하지 않고 푸대접하고 있다”며 “경상도 정권을 타도하자”는 말이 나왔다.

 71년 대선에서 이효상 국회의장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는 언급을 했다. 박정희와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이 선거에서 박 후보는 영남에서 70%, 김 후보는 호남에서 60%에 육박하는 지지를 얻었다.

 그 이후 총선과 대선때는 어김없이 지역구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영남권 출신 정부가 호남을 홀대한 것도 원인이었지만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표를 얻는데 이용한 것이 가장 컸다.

 지역주의는 영남과 호남에서 그치지 않고 충청권으로 확대됐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김종필 신민주공화당은 충청권을 발판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후 충청권 정치인들은 충청 역할론과 충청권 유권자의 위기의식을 자극하며 반영남, 반호남 정서를 부추겼다.

 풀어야 할 숙제

 우리 헌정사의 난맥상은 고도로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가 낳은 바가 크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구조이다 보니 모든 정치가 권력을 잡는데 올인하는 행태로 움직인다. 야당은 정부ㆍ여당 발목잡기, 흠집 내기에 혈안이고 여당은 때론 날치기로, 때론 무원칙한 타협으로 기형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일쑤다. 정치과정이 이렇다 보니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던 권력투쟁이 최근에는 상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임기 절반을 마친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부터 야당의 정치공세에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인사실패, 세월호ㆍ메르스 문제가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야당은 최근 몇 달을 제외하고 국회를 공전시켜 국민의 공분을 샀다.

 때문에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부통령제 등 권력을 분산시킬 다양한 대안 논의가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으나 진전은 없다. 대통령이 개헌논의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형식으로든 개헌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국회의원 소환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한번 당선되고 나면 어떤 잘못을 해도 사퇴하지 않는 한 바로잡을 방법이 없는 구조로는 퇴행적 국회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실질적인 지방자치의 확대도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고 균형발전을 가져오는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수도권중심, 정부중심의 국가운영은 도시중심으로 움직이는 글로벌 경제시대에 더 이상 맞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권력과 경제를 장악한 수도권과 중앙이 기득권을 내놓을 기미는 없다. 지방도 자치권 확대를 말로만 주장할 뿐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못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극복도 시급한 과제다. 기존 정치지도자의 은퇴, 영호남 교류활성화, 편중 없는 지역균형인사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나 기대하기도 어렵고 효과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주민자치를 강화하고 권역별비례대표를 도입하는 것은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여야의 이해가 달라 역시 도입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형국이다.

 국민통합은 미래를 나아지기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소, 노동개혁과 연금개혁은 국민을 통합하고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모두 기업, 고임금 근로자, 자영업자, 공무원 등 수혜기득권층이 양보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우리정치에 있어 핵심변수인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차를 좁히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다. 서로 상이한 대북접근법은 국내정치를 혼란으로 몰아가고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이 바뀔때마다 안보에 구멍을 내는 것은 위험하다. 국민적 합의를 거쳐 국론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남갈등 없이 통일문제를 효과적으로 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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