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斷指會(단지회)
斷指會(단지회)
  • 송종복
  • 승인 2015.09.16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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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斷:단 - 자르다 指:지 - 손가락 會:회 - 모이다

 安 의사는 조선의 이천만 동포를 일심 단결시키고, 항일투쟁을 위해 동지를 규합했다. 규합된 동지들이 손가락을 자른 피로써 태극기에 맹세하고는 자칭 단지회라 불렸다.

 필자는 지난 안중근 의거 100주년을 맞아 대한광복회의 주관 아래 안중근 의사의 항일사적을 답사했다. 그중 단지동맹비, 이토 저격장소, 여순감옥의 안 의사 기념개관식 등에 다녀왔다. 답사일행은 김을동(현:새누리당 최고위원)ㆍ김재경(현:국회예결위원장)ㆍ이사철(전:국회법사위원장)ㆍ문용린(전:교육부 장관)ㆍ관계인 등 10여 명이었으며, 당시의 견문한 단지회가 남긴 단지동맹비를 광복 70년을 맞아 생생하게 기록해 본다.

 일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에 있는 한인촌을 찾았다.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집단 이주시키고, 그 자리엔 ‘한인촌의 구거지’란 비석만 보였다. 이유는 일제가 러시아로 진출해 오면 그들과 연대한다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3∼4시간을 버스로 단지비(斷指碑)가 있는 연해주의 크라스키노 추리(煙秋 下里)로 향했다.

 지난 2001년 10월에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 강변에 단지동맹비를 세웠다. 이곳에 강물이 범람하자 다시 2007년 11월에 인근 남양알로에 농장 근처로 이전했는데, 이곳이 국경지역으로 편입되자 다시 2011년 8월에 유니베라 농장 입구로 이전했다. 이곳에서 1909년 2월 7일 安 義士가 단지회(斷指會)를 조직해 “우리가 이제까지 이룩한 일이 없다. 특별한 단체가 없으면 무슨 목적을 이루기가 어려우니 오늘 우리들은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고 몸과 마음을 뭉쳐 목적을 달성하자”고 했다.

 이에 항일동지 11명은 모두 동의하고는 왼손 약지(藥指)를 잘라 피를 한 사발 모아 태극기에 ‘대한독립(大韓獨立)’을 쓰고는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김기룡은 이완용을 암살하기로 하늘과 땅에 맹세하고 흩어졌다. 그중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 하얼빈 역에서 침략원흉인 이토를 총살함으로써 조선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알렸다. 그는 곧 체포돼 31세에 사형당했다. 그때 혈서로 쓴 태극기는 동생 안정근이 보관하다가 1946년에 분실했다.

 이 단지동맹비(斷指同盟碑)를 보는 순간 선열들이 조국을 위해 얼마나 풍찬노숙했는가 생각하니 신경이 아찔하고,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바싹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중국이 먼저 죽여야 할 원흉을 안 의사가 죽였으니 조선보다 중국이 더 존경하는 영웅이 됐다. ‘단지회’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자유대한에서 자랑스럽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광복 70년을 맞아 단지회(斷指會)의 존재를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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