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褓負商(보부상)
褓負商(보부상)
  • 송종복
  • 승인 2015.10.21 2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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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복 문학박사(사학전공)ㆍ(사)경남향토사연구회 회장
한(漢)의 <사기(史記)>에 의하면 주(周)나라에 망한 상(商)나라 백성들은 주(周)나라 중심인 시안(西安)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일부는 가지 않고 거리로 나서서 날품팔이를 지냈다. 이렇게 거리를 다니며 살아가는 상(商)나라 유민들을 가리켜 행상(行商)이라고 불렀고, 이들의 대부분이 상(商)나라 사람인 까닭에 상인(商人)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상인들은 주로 보부상으로 형성됐다. 보상(褓商)은 봇짐장자, 부상(負商)은 등짐장사인데 이를 통틀어 보부상이라 한다. 즉, 보상은 세공품이나 사치품을 보자기로 싸서 주로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부상은 일용품이나 가내수공업품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면서 판매했다. 이들은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로 돌면서 장사했다.

 조선시대는 관료사회로써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는데, 첫째는 지식인의 선비사회, 둘째는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셋째는 제조업을 주로 하는 공업인, 그리고 제일 신분이 낮고 천하게 여기는 직업은 상업에 종사하는 상인이었다. 그런 이유는 상업은 비생산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용해 이득을 얻을 뿐, 국가로 보아서는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고 천대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 후기 실학사상이 등장함으로 상업이 대접받기 시작했다. 이어 유수원(柳壽垣)이 상업에 대한 최초의 책 <우서(于書)>를 발간함으로 상인을 우대하는 시대가 도래됐다. 이때 보부상들은 서로를 위하고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며 윗사람을 섬기고 동료를 사랑하며 병든 자는 구제하고 죽은 자를 장사지내 줬다. 이러한 까닭에 회원 상호 간에 예의범절과 우의가 돈독하며 자본의 융통까지 해줬다. 그리고 폭리와 사기행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분은 천인이지만 사회로부터 천대를 받지 않았다.

 국가는 이들의 충의정신과 협동정신을 가상히 여겨 조정에서는 전매특권까지 부여했다. 이제 상인들도 보부상의 정신을 이어받아 사농공사(士農工商)의 서열이 상공농사(商工農士)의 서열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상인들이 앞장서서 옛 보부상의 정신을 부흥해 주기 바란다. 이젠 전국 곳곳에서 상인대학이 세워지니, 앞으로 상인들이 사회를 ‘리더(leader)’할 시대가 돼야 하지 않나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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