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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소고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소고
  • 박태홍
  • 승인 2015.11.16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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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지금 우리들은 다변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는 모습이나 방법이 다양하기 짝이 없어 어떻게 사는 것이 정상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일까? 박근혜 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경제혁신과 더불어 국정기조의 한 축으로 설정했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고질적인 병폐와 부조리를 끊고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전 분야에 걸쳐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는 국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부분적으로나마 점진적 실효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날 복지전담 체계의 관리시스템 부실과 도덕적 해이 등으로 누수되고 있던 복지예산을 찾아내 실수요자에게 실질적인 복지 혜택을 부여하는 등 분야별 비정상의 정상화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또 구조적 비리와 파행적 부조리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엄정하고 공정한 법 집행으로 법질서 확립에도 우선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규제, 관행, 구조, 병폐, 제도 등에서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의 비정상화의 정상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정상화란 바른 상태, 즉 이상한 데가 없는 보통의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반인들에게 널리 통하는 개념이 정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다변화 하다 보니 그리고 이 나라가 분단돼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보니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도 어려운 실정이다.

 登泰山而小天下(등태산이소천하). 태산에 올라가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는 고사성어 ‘사람은 그가 있는 위치에 따라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했던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그래서 설왕설래하는 것 아닌가 한다.

 이래서 역사교과서도 뚜렷한 정답이 없으면서 시류에 의해 흘러가는 것으로 보여 진다. 왜냐하면 가톨릭의 성경도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총 73권으로 나눠져 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담은 복음서 또한 마테오, 마르코, 루카, 요한 등 모두 4권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인 약 19억 명의 크리스천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성경 또한 그러한데 이 나라의 역사교과서가 국정과 검정으로 나눠져 시시비비를 겪고 있는 것은 국가 발전의 계기 아니겠는가?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정기조로 삼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는 역사교과서와 상관없이 계속돼야 한다. 이 나라에서 만연하고 있는 구조적 비리와 파행적 부조리를 일소해야 하고 공정한 법 집행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등식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진 이념논쟁 탓인지 비정상적인 행태들이 판을 흔들어도 민주주의 또는 표현의 자유, 국민행복알권리 등에 의해 사회적 통념의 정상이 뒷걸음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안타깝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지켜나가는 것은 국민들의 의식도 중요하지만 경찰, 검찰, 사법권 등 국가 공권력의 힘이다. 그런데 어느 한 경찰관이 검사가, 판사가, 국가공무원이, 근로자가 소신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통념을 벗어난 일탈의 행동으로 반쪽 정상의 자리를 꿰차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보수와 혁신으로 양분된 사회적인 탓도 있겠지만 도학의 정치를 구현해야 할 정치인들의 의식 또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담임을 폭행한 학부모, 관련 업계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국회의원, 딸이 다니는 회사에 공적자금 거액을 투자한 공사사장, 허위진단서를 발급한 의사, 기업인들을 해외 원정도박장에 끌어들인 조폭, 아동음란물 유포를 방조한 기업인, 부하직원을 성폭행한 상사, 빈집만을 골라 귀금속 등 수천만 원을 훔친 절도범, 폭력시위를 주도한 자 등의 비정상인들은 현행법에 의해 단죄를 받을 것이 분명하다.

 그건 그렇고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홍모 씨의 1인 시위가 있었다. 그는 사회적 예술을 꿈꾸는 거리의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지방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까지 마친 재원이다. 사회적 예술로 ‘올바름’을 알릴 것이라고 당찬 포부까지 지닌 여성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삶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시위 팻말에는 ‘청와대는 너희 집이 아니고 역사도 너희 집 가정사가 아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이 시위 팻말의 구성상 박근혜 대통령 1인을 두고 적은 만큼 청와대는 ‘너희 집’이 아닌 ‘너의 집’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너’란 표현은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 아닌가. 대중에게 ‘올바름’을 알리기 이전에 본인부터 ‘올바름’을 깨우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비정상과 정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곡예를 하듯 살아가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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